환율 하락, 또 한번의 기회
환율 하락, 또 한번의 기회
  • 홍승희
  • 승인 2005.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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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경제의 최대 문제는 내수침체와 그로 인한 기업 생산기반의 붕괴위기, 기업의 전망 부재로 인한 투자부진이라는 내적 변수와 3년째 이어지고 있는 달러 약세화를 통한 환율공세라는 외생 변수가 한꺼번에 몰아치고 있다는 것이다.
달러 약세화는 이미 2002년 초부터 본격화된 부시 행정부의 중심전략인만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달러보다 엔화 연동성이 커진 이즈음 원`달러 환율의 하락폭이 엔`달러 환율에 비해서도 더 크다는 점에서 한국 시장의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은 우려를 자아낸다. 달러당 99엔 하던 10년 전에 이미 80엔까지 떨어져도 이익을 낼 전략을 마련하던 일본 기업들에 비해 한국 기업들의 환율 정책은 너무 안이해 보인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 주최 세미나에서 달러당 1천60원, 960원, 920원 세 개의 환율 시나리오를 놓고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자료가 발표됐다. 이 시나리오대로 보자면 현재 정부가 내놓는 올 한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적어도 환율이 1천60원 이상에서 안정될 때 달성 가능하다. 1천60원일 때도 기대 가능한 성장률은 3.7%에 머물고 960원까지 떨어지면 3% 안팎 성장, 920원까지 떨어지면 2%대로 성장률이 미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 메릴린치 증권사의 한 외환전략가는 원`달러 환율이 2005년 중에는 1천20~1천50원 선을 유지하겠지만 2006년이면 1천원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주미 한국상공인들 앞에서 발표했다. 1월 27일 현재 이미 1천30원선이 붕괴된 것을 생각하면 이 전망도 다소 낙관적인 것은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실상 이런 전망마저도 시장 움직임이 안정적일 때 가능하지 양은냄비에서 물끓듯 삽시간에 푸르르 끓어오르는 시장분위기에서는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1천원을 밑도는 경험을 하게 될 위험이 매우 크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부시2기 행정부 입장에서 경제 문제는 더 이상 뒷전에 놓아 둘 수 없는 지경이어서 결국 경제에 보다 집중할테고 그럴 경우 달러 약세전략에 걸림돌이 되는 아시아 각국의 외환정책에 깊숙이 간여하고 나서거나 보호무역의 장벽을 더 높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한국은 국민 대중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하다는 아우성과는 별개로 일단 경제성장률이 여전히 OECD 평균보다 높고 2004년의 경상수지 흑자도 연간 131%라는 경이적 증가폭을 보이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달러가치 하락에 따라 그 증가폭이 더 커졌을 터이지만 미국 입장에서 압력을 가할 충분한 명분이 될 터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가할 압력에 대응할 전략을 치밀하게 마련하지 못하면 치명적 타격을 받을 우려도 있다.
원고 시대에 대한 대비책으로 10년전 엔고를 겪은 일본 기업들의 전략을 보라는 충고가 있지만 당시 환리스크 강화, 원가절감, 사업구조 고도화 및 고부가가치화, 생산기지 글로벌화, 내수시장 공략 강화 등 그들의 전략 가운데 한국이 받을 수 있는 부분과 받기 어려운 부분이 공존한다. 생산기지의 글로벌화는 이미 상당 수준 진척된 상황이어서 더 큰 폭을 확보하는데는 한계가 있어 보이며 내수시장은 이미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려울만큼 초토화된 상태다. 기업 스스로 오로지 감원에 의지한 구조조정 및 원가절감 전략으로 내수시장 붕괴에 앞장선 터라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데 여기서 더 진행되면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위험만 커질 뿐이다.
원가절감이 시설 첨단화와 기반기술 확보를 병행하며 진행되지 못하고 높은 로열티를 지불하는 수입기술 의존형 고부가가치화를 지속해온 결과가 오늘날 내수시장의 붕괴와 기업전망 부재의 근본 원인이다. 지금이라도 생산기지의 글로벌화는 저임금지역 위주에서 수출지역 중심으로 재편하고 원가절감은 원천기술, 기반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확대를 통해 도모해야 한다. 생산기지 이동은 대기업 홀로 깃발 내걸 일이 아니라 협력업체와의 동반 진출이 돼야 노동자들도 함께 글로벌화를 체험하게 이끌어야 한다.
더디다고 조바심내기보다 한걸음이라도 착실하게 내디딜 때 안정적인 기업의 미래가 보일 것이다. 이 과정을 인내하면 오늘날 환율위기는 진정으로 기업 영속성을 담보하는 기회로 변할 것이다.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시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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