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자초한 금융감독당국

2009-08-21     박민규 기자

[서울파이낸스 박민규 기자] 금융감독원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달과 다음달 중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은 3년 후 갱신 때 표준화된 실손의료비 담보로 변경된다. 하지만 홈쇼핑 등 영업 일선에서 이 같은 내용을 알리지 않고 있어 3년 후 대량 민원 발생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실손의보 표준화 작업이 아직 확정·발표되지 않아 이달에 가입한 고객들은 향후 자신들의 계약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표준화 실손의보가 확정·발표된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있다. 다양한 실손의료비 담보를 어떤 방식으로 매칭시킬지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반상해의료비 담보의 경우 표준화 작업을 통해 사라질 전망인데 이 담보를 표준화된 실손의료비 담보로 이전할 때 가입금액 등 상이한 계약을 어떻게 연결시킬지 기준이 불분명하다.

실제로 회사별로 일반상해의료비 담보의 이전 기준은 제각각이다. 일부 손보사는 표준화된 실손의료비 담보로 자동 전환되지만 다른 손보사는 고객이 신청해야 이전된다. 또한 이전시 병력을 확인해 새로 가입심사를 벌이는 곳도 있고 심사 없이 배서해주는 곳도 있다.

사실 이 같은 상황은 예견된 일이다. 왜냐하면 실손의보 제도 변경 정책을 주도한 금융감독당국이 8·9월에 가입한 실손의보 계약에 대해 3년 후 갱신 때 표준화된 실손의료비로 바뀔지 아닐지를 미리 결정짓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위원회 실손의보 담당자조차 8·9월 가입 계약이 3년 후 표준화된 실손의료비로 갱신되는지 여부를 모르고 있을 정도다. 현재 실손의보 표준화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금감원 담당자는 제반 상황이 너무 급작스럽게 진행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급작스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들이 상황이 급작스러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정책의 허술함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실손의보 보장제한 정책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고 보는 이유기도 하다.

애초에 8·9월 가입 계약을 향후 표준화된 실손의보로 갱신할 것이었다면 최소한 8월 전에 표준화 작업을 마쳤어야 함이 마땅하다. 물론 생명·손해보험업계 간 의견 차로 인해 지연된 부분이 있다지만 그렇다면 의견 조율을 마친 후에 정책을 시행했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이번 실손의보 보장제한 정책은 처음부터 헛발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보장제한의 근거도 불확실한 데다 정책논리도 비약이 많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본인이 지출한 의료비를 100% 보장하는 실손의보 때문에 과다 진료가 야기된다는 주장은 억측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내가 낸 돈을 그대로 보장받으니 손해볼 게 없다는 생각에 일부러 병원에 입원하거나 통원치료를 받는다는 논리는 쉬 납득하기 힘들다. 물론 일이 극히 고되고 힘들다면 굳이 입원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휴식을 위해 입원하게 되는 상황도 전혀 없진 않겠지만 보편적인 사례는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이득이 발생하기 때문에 과다진료를 받게 된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그렇다면 입원해서 이득이 발생하는 보험상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하루에 몇만원씩 입원일당 등을 제공하는 정액형 담보가 그것이다. 현재 대부분 실손의보 상품은 입원일당 등 정액형 담보를 특약으로 부가할 수 있도록 돼있는데 100% 보장보다는 이같은 정액형 담보가 더 과다진료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담보의 경우 실제로 지출한 의료비를 제하더라도 금전적으로 이득이 생기기 때문이다.

100% 보장으로는 입원해서 금전적으로 손해도 안 보이지만 그렇다고 득도 안 보는데 굳이 이 때문에 필요없는 진료를 받는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다. 따라서 100% 보장한도를 90%로 줄일 게 아니라 입원일당 같은 정액형 담보를 폐지한다든지 아니면 보장금액을 줄인다든지 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게 더 합당하다.

그럼에도 보건복지가족부는 꿋꿋이 100% 보장한도 낮추기에 목을 매 결국 성공했다. 거대 금융자본의 의지와 일맥상통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미숙한 당국 때문에 이래저래 애꿎은 고객들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