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자형의 불안정 회복 경로

2009-08-14     장보형

하나금융연구소 장보형 연구위원

리만 사태 여파로 글로벌 금융패닉이 확산되는 가운데 우리 경제도 심각한 충격에 직면해야 했다. 그러나 올해에는 정부의 공세적인 대응과 유가 하락 등에 따른 교역조건 개선에 힘입어 1/4분기 우리 경제는 전기비 +0.1%의 소폭 플러스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

올 초까지만 해도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충격의 재현을 걱정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과연 대공황의 위협은 사라졌는가?
연초까지만 해도 글로벌 금융패닉 여파로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에서도 경기하강이 본격화 되는 가운데 세계 교역 위축 및 제조업 침체로 인해 국내 수출이 급강하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도 지난 해 중반 이후 유가 하락 및 환율 상승의 시차효과가 점차 반영되면서 실질 구매력이 개선되고 수출 경기가 전월 대비로 회복세를 보이면서 이제 경기 급랭의 충격이 완화되고 있다.
경기 급랭에 따른 반사효과 외에도 적극적인 금리인하와 대규모 경기부양책 등에 따른 정책 효과도 점차 가시화 되고 있다.

정부도 적극적인 확대재정정책을 통해 2008년 중 9조원을 투입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는 지금까지 모두 39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재정지출을 추진하면서 경기부양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회복 동력은 대부분 경기 급랭에 이은 반사효과 와 정책 효력에 의존한 것이며, 지속적인 회복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민간의 자생력 회복과는 아직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우선, 점차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 됨에 따라 재고조정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재고 재확충 여지는 제한적이며, 사업성 악화 및 각종 불확실성 창궐로 인해 설비투자도 회복세를 보이기는 힘들다. 그리고 고용불안과 가계 채무부담에 따른 신용제약으로 인해 민간소비 여건도 뚜렷히 개선되기는 어렵다.

정부 정책효력도 대부분 한시적 효과에 그칠 공산이 크다. 실제로 우리 정부도 점차 재정적자 부담이나 과잉 유동성 문제로 인해 더 이상 추가 부양책을 펴기는 힘든 상황이며, 오히려 중장기적인 후유증을 의식해 점진적으로나마 ‘출구 전략(exit strategy)’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번 위기는 직접적인 금융 부실 외에도 달러화 리사이클링에 기반한 세계의 ‘최종 소비국’ 미국의 과도한 차입 등과 같이 지난 10년 이상에 걸쳐 누적되어 온 각종 경제적 불균형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균형에 대한 대대적인 청산 압력이 본격화 되면서 세계 경제의 전반적인 “축소균형”이 불가피하다. 특히 채무 과잉에 시달리는 가계와 설비 과잉 및 수익성 악화에 몸살 앓는 기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차원의 디레버리징이 지속될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국내 경기회복 모멘텀이 견실해 보이지만,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데다 국내적으로도 각종 제약 요인이 상존한 상황에서 지금의 회복세가 지속될 가능성은 제한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리만 사태 이후 경기 급랭(언더슈팅)에 이은 한시적 차원의 되돌림 효과가 정부의 초강도 정책효과와 결부되어 일종의 오버슈팅을 빚고 있을 뿐, 민간 부문의 자생력 회복으로 뒷받침 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회복 모멘텀은 다시 약화될 소지가 크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버블 붕괴 이후 글로벌 차원의 광범위한 디레버리징 과정에서 우리 경제 역시 전반적인 축소균형 압력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사실 외환위기 당시만 해도 대외 여건이 대체로 양호한 가운데 국내 부실이 핵심 쟁점이었으나, 지금은 대외 불확실성이 충격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어 자체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 경제는 2/4분기의 집중적인 회복 이후 3/4분기까지는 비교적 견실한 회복세가 기대되지만, 외환위기 이후처럼 ‘V자형’의 회복세를 이어가기보다는 경기 사이클이 짧아지면서 4/4분기 경에는 리먼 사태 이전의 하향 추세를 반영해 회복 모멘텀이 다시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에 더블딥(double-dip)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연말 경기재둔화에 따른 ‘W자형’의 불안정한 회복 경로가 유력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