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의 사변'?…南北, 월드컵 함께간다

2009-06-18     이양우 기자

[서울파이낸스 이양우 기자]남북한이 2010년 열리는 남아공 월드컵에 함께 간다. 월드컵 역사는 물론, 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사변'이다. 북한은 44년만의 월드컵 본선행이고, 남한은 20년만의 '예선 무패'라는 각별한 의미도 있다. 

북한이 18일 3시(한국 시간)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와의 원정 경기에서 양 측이 90분간에 펼쳐진 혈투끝에 무승부를 기록함으로써 한국이 조1위, 북한 조2위로 동시에 남아공 땅을 밟게됐다.  

한국은 승점 16으로 마지막 두 경기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이미 남아공 행을 확정한 상태. 문제는 북한.

남북한이 '월드컵 동시출전'이라는 역사를 쓰는데는 17일과 18일 이틀간 수 시간에 걸쳐 벌어진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남북한과 이란, 사우디 등이 함께 속한 '죽음의 조'(B조)에서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      

북한의 월드컵 진출 여부는 17일 저녁 8시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란과의 마지막 홈경기가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한국이 이기면 더 좋고 비기기만해도 북한의 월드컵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태. 하지만, 우리 대표팀은 홈그라운드에서 의외로 고전했다. 지면 무조건 탈락, 비겨도 와일드 카드를 기대해 봐야하는 이란의 파상공세에 밀려 한국이 선취골을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북한의 월드컵 진출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 의지가 선수들에게 각인된 때문인지, 우리 대표팀은 결국 귀중한 한 꼴을 추가함으로써 무승부를 일궈내는데 성공했다. 모두가 '지는 구나'하는 순간 '캡틴 박'(박지성)의 동점골이 이란의 골망을 가른 것. 

한국과 이란과의 무승부는 단순한 무승부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예선전 무패'라는 값진 기록이지만, 북한에게는 월드컵 진출 여부를 가늠짓는 결정적 변수였다. 5시간후 사우디에서 벌어지는 북한과 사우디와의 경기에서 북한이 무승부만 기록해도 월드컵 진출을 할 수 있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금쪽같은 골이었다.

북한이 사우디와 무승부만 기록하면 조 2위로 월드컵행이 가능해진다는 얘기. 하지만 적지에서 사우디와 비긴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

그럼에도 북한은 특유의 근성있는 플레이로 적지에서, 그것도 홈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속에 접전끝에 상우디와 무승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사막에서 벌인 '사투'였다. 북한은 승점 12점으로 사우디와 동점이지만 골득실에서 앞섬으로써 남한에 이어 조 2위로 월드컵 티켓을 거머쥐었다.

월드컵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북한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나뒹글면서 기쁨의 눈물을 쏟아냈다. 이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남한의 축구팬들의 마음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눈물'을 통해 '피'의 진함을 확인하는 순간. 

축구는 스포츠일뿐이다. '스포츠 내셔널리즘'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자주 듣게 된다. 하지만, 스포츠는 단순히 스포츠일수 만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또한 인류의 살아있는 스포츠 역사다. 70년대 미국과 중공(중국)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핑퐁외교'(탁구)가 그 단적인 예. 최근들어 웬지 깊어지기만 하는 듯한 남북한간 긴장과 갈등. 이런 가운데, 남북한 '월드컵 동행', 무조건 기분 좋은 일이다.

내년 6월 남아공에서 펼쳐질 지구촌 32개국의 축제 한마당. 그 중심에서 남북한이 받게 될 '특별한' 스포트라이트를 생각하니, 벌써 가슴 설렌다. 남북이 이룰 성적과 무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