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파고'에 1300원 뚫린 환율···"1350원까지 상단 열어야"

23일 원·달러 환율, 4.5원 상승한 1301.8원 마감 13년來 '최고'···역대 1300원 진입, 4차례에 불과 글로벌 인플레 속 대외 위기 요인 겹겹이 쌓여

2022-06-23     박성준 기자
23일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원·달러 환율이 근 13년 만에 1300원을 뚫어냈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현 위기 상황에 대해 과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까지도 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위기 상황을 타개할 만한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 당분간 강(强)달러 국면을 피할 수 없는 만큼, 환율 상단이 1350원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23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장보다 4.5원 오른 달러당 1301.8원으로 마감했다. 이날 환율은 전거래일(1297.3원)보다 1.7원 높은 1299.0원으로 개장한 뒤, 약 10분 만에 달러당 1300원을 돌파했다.

환율이 1300원에 도달한 것은 지난 2009년 7월13일(1315.0원) 이후 12년 11개월 만이다. 간밤 뉴욕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이미 1300원을 넘어선 만큼, 1300원대 진입은 예고된 일이었다.

역대 사례를 보더라도 1300원대의 환율은 역대급 위기 상황과 맞먹는다.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선 때는 대표적으로 과거 1997년 말~1998년 외환위기를 비롯해 △2001년 미국 닷컴 버블 붕괴 △2001년 국내 카드채 금융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 불과하다.

이처럼 환율이 역대 위기 수준까지 올라선 데에는 미국발(發) 긴축 공포 여파로 확대된 위험회피 심리가 달러 수요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달 41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목격했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달 물가 안정을 위해 1994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자이언트 스텝'(0.75%p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미국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금리인상 행보를 보이면서 달러를 찾는 수요는 더욱 확대됐고, 내외금리차가 커지는 비(非) 달러 통화국들은 상대적으로 자국 통화 약세 압력에 놓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 커진 금리차는 자본유출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달러는 세계 통화를 넘어 글로벌 자산 중에서도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도 꼽히는 만큼, 전 세계가 긴축 기조로 전환하고 있는 현 시점에선 글로벌 달러 강세를 피하기 어렵다.

장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통화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며, 이런 불확실성을 현재 시장에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심각한 물가를 반영해 금리를 빠르게 올리고 있고, 우리나라와도 금리 상단이 같아졌다. 이미 1300원 턱밑에서 움직였던 만큼, 1300원 돌파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고(高)환율을 뒤집을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예상을 웃도는 글로벌 물가 상황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태, 중국 경기 둔화 우려 등은 글로벌 경기 위축 우려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여기에 국내에서는 무역수지 적자 등 대내 펀더멘털에 대한 우려까지 맞물리면서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정부 역시 꾸준히 구두개입성 발언을 내놓고 있지만, 원론적인 언급 수준에 그치고 있어 사실상 1300원 돌파 흐름을 막아내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심리적 저항선인 1300원도 뚫리면서 환율 상단은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부 낙관적인 시각에서나 (1300원 돌파가) 어렵다고 했을 뿐, 이미 1300원대 진입은 예상이 됐던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까지 인플레이션 추이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높게 보면 최대 1350원까지도 상단을 테스트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지난달과 이달 빅스텝(0.5%p 금리인상),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한 가운데 금리인상 효과를 최소 3개월까지 본다면 9월까지 미국의 소비자물가, 연준의 기조 등에 따라 변동성이 굉장히 크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현 환율 수준이 오버 슈팅(단기급등)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펀더멘털에 대한 위기보다는 여러 복합적인 대외 위기 요인을 시장에서 너무 빠르게 시장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금융위기 당시 신용부도스와프(CDS) 스프레드는 500~600bp(1bp= 0.01%) 수준까지 치솟았지만 현재는 40bp 이내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국가나 기업이 부도가 났을 때 손실을 보상해주는 일종의 보험 성격 금융파생상품으로, 해당 국가의 경제 위험이 커지면 대체로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위기 당시 리스크 섹터에서 볼 수 있었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현재의 위기 정도는 크지 않은 데 반해, 환율은 너무 빠르게 올랐다"면서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원자재 가격 등이 내릴 경우 긴축 압력도 완화되고 환율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와 같이 급등 국면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