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떨어지긴 했는데"···주유소마다 기름값 인하율 들쭉날쭉

인근 주유소 기름가격에 부지 임대 등 다양한 요인 대리점이 주유소에 공급 시에도 다른 가격으로 제공

2019-02-21     김혜경 기자
지난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지난 18일 오후 방문한 서울 송파구의 한 SK에너지 셀프자영주유소는 이달 초 시민단체에서 서울지역 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가장 많이 인하한 주유소로 꼽은 곳이다. 이날 입간판에 적힌 L당 휘발유 가격은 1417원, 경유는 1308원. 유류세 인하 정책이 실시되기 전인 지난해 11월 5일과 비교했을 때 휘발유는 711원, 경유는 629원이나 떨어졌다. 3개월 전 해당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2128원, 경유는 1937원으로 송파구 지역에서 유일하게 휘발유 기준 2000원대를 상회하는 곳이었다. 이 가격은 기름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강남에서조차 고가에 속했다. 

이 주유소가 위치한 지하철 9호선 삼전~석촌역 사이에는 11개의 주유소가 약 300~800m 간격으로 자리잡고 있다. 송파구 32개의 주유소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이 지역에 몰려있는 셈이다. 이날 기자가 둘러본 송파구 주유소 가운데 가장 저렴한 곳은 선수촌아파트 근처 GS칼텍스 셀프주유소였다. SK 주유소와는 직선으로 800m 거리. 유류세 인하 전 휘발유와 경유를 각각 1676원, 1484원에 판매하던 이곳은 휘발유의 경우 349원 내린 1327원, 경유는 250원 떨어진 1234원에 팔고 있었다. 

1km 정도 떨어진 에쓰오일 주유소에서는 휘발유를 1375원에, 경유는 1275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이곳은 유류세 인하 전보다 각각 320원, 253원 하락했다. SK 주유소가 이들보다 두 배 이상의 가격을 내렸지만 여전히 L당 가격이 높은 편이었기 때문에 GS 주유소에만 차량이 몰렸다. 입간판에는 '송파구 최저가 주유소'라는 홍보 문구가 번쩍거리고 있었고 차량은 끊이지 않고 몰려들었다. 빈 주유기가 없어 대기하는 차량도 2~3대 보였다. 소형 SUV를 소유한 한 소비자는 반경 1km 내에서 제일 저렴한 곳을 찾아왔다고 했다. 반면 같은 시각 에쓰오일과 SK 주유소는 한산했다.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은 지난 7일 국제유가 하락 영향과 유류세 인하분을 모두 기름 가격에 반영한 주유소 비율을 발표한 바 있다. 감시단은 휘발유의 경우 유류세 인하분 123원과 국제 휘발유 가격 하락분 179.15원을 더한 값인 302원을, 경유는 258원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해당 분석은 국제 휘발유·경유값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는 2주간 격차를 두고 이뤄졌다. 휘발유 L당 302원을 모두 반영한 주유소는 전국 1만1270개 주유소 가운데 92.56%, 경유 기준 258원을 인하한 주유소는 44.73%로 집계됐다. 

서울 지역만 놓고 보면 휘발유 기준 302원 이상 인하한 주유소는 71%, 경유의 경우 34%였다. 정유사 4사 가운데 시민단체가 제시한 하락분을 반영한 주유소 비율이 가장 많은 업체는 80%를 기록한 현대오일뱅크였다. 이어 에쓰오일, GS칼텍스, SK에너지순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휘발유와 경유의 인하분 반영 비율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나고 왜 주유소마다 가격에 반영된 하락 범위가 다른 것일까.

이서혜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연구실장은 "일반적으로 주유소에서는 휘발유보다 경유 판매량이 더 많은데 경유 가격 변동은 휘발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둔감한 경향이 있다"면서 "디젤 차량 보조금 정책 등 효과로 가격이 비싸도 소비는 변하지 않는 현상, 즉 가격탄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휘발유보다 경유에 유가 하락분과 유류세 인하 반영이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주유소마다 가격과 인하율이 제각각인 것은 왜일까. 기자는 송파구에 이어 강남구에 위치한 주유도 몇 곳도 방문했다. 18일 기준 가격이 제일 비싼 곳은 학동역 인근 SK에너지 주유소로 휘발유는 L당 1998원, 경유는 1898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3개월 전과 비교했을 때 휘발유는 292원, 경유는 192원 각각 인하됐다. 선·정릉 앞 GS칼텍스 주유소 한 곳도 비싼 축에 속했다. 휘발유는 280원 인하된 1899원, 경유는 206원 내린 1769원이었다. 이들 주유소는 지난해 11월만 해도 휘발유가 2000원을 웃돌았다. 유류세 인하분은 충분히 반영됐지만 유가 하락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들 강남구 주유소 2곳의 특징은 송파구 주유소보다 밀집돼 있지 않고, 상대적으로 주변 주유소들이 비슷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류세 인하 시행 전 휘발유 기준 2000원대를 기록한 송파구와 강남구 SK 주유소는 브랜드는 같지만 인하 가격은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이유가 뭘까. 송파구에서 휘발유 기준 1800원대를 고수했던 또 다른 GS칼텍스 주유소도 1500원대로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인근 주유소 가격 영향과 부지 임대·매입 여부, 정유사가 주유소에 제공하는 단가 차이 등을 요인으로 들 수 있다. 

이 실장은 "일부 주유소들은 임대료 때문에 가격이 높다고 말하지만 주변에 위치한 주유소의 개수와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도 함께 봐야 한다"면서 "가격이 높은데도 소비자가 몰린다면 해당 주유소는 싸게 팔 이유가 없다. 반면 서대문구를 비롯, 가격이 유달리 저렴한 주유소 주위에는 4~5개가 몰려있는 양상을 보이는데 근처 주유소가 비싸면 소비자는 한곳으로만 몰리니까 의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정유사가 해외로부터 들여온 석유 제품은 도매업자인 대리점과 소매업자인 주유소를 통해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1997년 석유산업 자유화 정책에 따라 정유사와 대리점, 주유소 등 공급업자가 가격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이 허용됐다. 이전까지 정부는 정유사 가격 혹은 소매가 상한을 규제해왔다. 주유소 단계에서는 자율경쟁이지만 정유산업 자체는 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에 과점의 성격을 띈다. 주유소가 공급받는 가격이 얼마인지에 따라 소비자 가격도 영향을 받는 것이다. 

휘발유 기준 소비자 판매가는 '국제 휘발유 가격+공장도가격+유류세+주유소 유통비 및 마진' 등으로 구성된다. 정유사는 해외에서 원유를 구매해 정제한 후 마진을 남기는데 세전 공장도가격에는 정유사 유통비와 마진, 관세 등이 포함된다. 주유소, 대리점에 판매되는 도매가는 거래처 신용도, 판매량 등의 복합적인 요인에 따라 개별 책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유소는 비용과 마진을 감안해 소비자 판매 가격을 결정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국제유가와 환율, 공장도가격 기준 등에 대한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주유소 가격도 대략적으로 예측이 가능했지만 현재는 주먹구구식"이라면서 "공장도가격은 정유사별로 다른데 주유소마다 책정되는 단가 또한 다른 경우가 많다. 친분과 물량, 특정 지역에서의 브랜드 경쟁력 등의 요인이 고려된다. 차이는 L당 10~30원정도지만 주유소 입장에서는 형평성이 없다는 것이 불만"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영의 경우 예전에는 부지를 매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80% 정도가 임대 형태로 알고 있다"면서 "통상 주유소 마진은 3~5% 정도인데 카드 수수료(1.5%)를 포함하면 지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폐업 처리 비용이 없어서 적자를 보면서도 영업을 하는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