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삼성電 프린팅사업 매각 '막판 진통', 무엇이 문제인가

2016-10-20     박수진 기자

보내는 회사·떠나는 직원, 고용보장·위로금 놓고 '평행선'

[서울파이낸스 박수진기자] 내달 1일 휴렛팻커드(HP)에 매각되는 삼성전자 프린팅솔루션 사업부 직원들의 고용 문제를 놓고 사측과 직원들 간의 갈등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프린팅 사업부 직원들은 매각 뒤 회사측이 보장한 '고용 기간 5년'이 너무 짧다는 주장인 반면, 삼성전자는 '정년을 보장하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며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대기업 정년 기대했는데 '5년 고용 보장' 이라니…"

지난 19일 삼성전자 프린팅솔루션 사업부 소속 직원들은 오후 5시30분부터 삼성 수원사업장 인근에 위치한 경기 수원시 영통구청 앞에서 고용보장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지난달 12일 삼성전자가 선제적 구조조정 차원에서 프린팅 사업부를 HP에 매각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지난 11일과 13일, 17일에 이어 진행된 네 번째 집회다. 총 1700명의 직원 중 1300여명이 참여했다.

이날 직원들은 앞서 집회서 요구한 바와 같이 △매각 이후 안정적인 고용 보장 △임금 복리 후생 등 처우 보장 △위로금 지급 등을 촉구했다.

이중 논란의 핵심은 매각에 따른 안정적인 고용 보장으로, 고용 보장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측이 제시한 위로금을 더 올려 받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프린팅 사업부 소속 직원 A씨는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유는 대기업에게 기대할 수 있는 정년보장과 그에 따른 안정적인 수익이었다"면서 "그러나 이번 매각 결정으로 정년보장은 커녕 5년이라는 짧은 시간만 주어졌다"고 하소연했다.

B씨도 "삼성전자 입사 당시, 프린팅 솔루션 사업부에 지원한 것이 아니라 신입사원 교육 뒤 발령 받은 부서"라며 "내가 만약 모바일 사업부나 다른 부서에 발령 받았더라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측은 최소한 사업부 직원들에게 다른 부서로 갈 수 있는 선택권을 줘야 하지만, 그런 기회 조차 박탈당했다"면서 "매각 결정부터 매각 후 고용 보장 문제까지 직원들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 않아 벽보고 얘기하는 느낌이다"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삼성전자 측은 직원들을 대표하는 비대위의 요구가 무리하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프린터사업 세계 1위인 글로벌 기업 HP로 옮기는 상황에서 비대위가 5년 이외 정년 보장과 과도한 위로금, 연봉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삼성전자는 원만하고 합리적인 합의에 이르기 위해 직원들과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계 프린터 기업 1위 HP, 삼성 직원들을 꺼리나?

그렇다면, 삼성전자 측의 말대로 프린팅 사업부 직원들이 프린터와 컴퓨터 제작 부문 세계 1위인 HP에서 일하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불안해 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HP가 업계에서 구조조정을 심하게 하는 회사라는 평판 리스크가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HP의 다이온 와이슬러(Dion Weisler) CEO는 "HP의 핵심 사업이 메크로 경제 상황에서 도전받고 있다. 인력 감소는 모든 부분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삼성전자 측이 직원들에게 HP로 매각된 이후 보장한 5년 이후의 고용안정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HP는 엔터프라이즈(HPE)와 분할된 직후인 지난해에만 3000명의 직원을 해고한데 이어, 지난 13일(현지시간) PC와 프린터 수요 감소에 따른 비용 절감 차원에서 앞으로 3년간 3000~400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 직원들은 지난달 27일 열린 HP사장단의 설명회에서 '정년 보장을 해 줄 수 있느냐'고 질문했지만 HP 측은 "우수한 기술력을 포함한 인력들을 데려가고 싶다"는 모호한 답변만 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8월, HP에서 해고된 전직 직원 4명이 "연령차별에 따른 해고는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도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용보장위로금 인상'으로 쟁점 전환

이같은 상황 때문에 사측과 직원들 간 고용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위로금 금액'으로 비화됐다. 업계에 따르면, 사측이 제시한 위로금은 약 5000만원이고, 직원들이 제시한 위로금은 대략 1억원대 중반(약 1억5천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직원들은 사측이 제시한 5000만원이라는 금액이 많아 보이지만 신입사원의 2년 치 성과급에 해당된다며 전혀 많은 것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의 연봉은 4000만원 수준. 따라서  삼성전자가 매년 1월 말 전년도 실적을 바탕으로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위로금 5000만원은 2년차 신입사원이 받게 되는 2년 치 성과급에 해당하고, 연봉 8000만원인 과장급이라면 1년 치 성과급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프린팅 사업부 직원 C씨는 "사측 보다 위로금 액수를 높게 제시한 것은 정년 보장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를 염두에 둔 것"이라며 "직원들 입장에서는 5년 후 고용 보장이 안개 속인데 1~2년치 성과금을 위로금이라고 제시하며 생색을 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 이번 매각 결정으로 마이스터고를 졸업한고 올해 3월 입사한 20~30명의 신입직원들은 입사 6개월 만에 선택권 없이 삼성전자를 떠나게 됐다.

마이스터고 출신 한 직원은 "이번 프린팅 사업부 매각으로, 입사한지 1년도 안 된, 사업부 선택 권한도 없이 배치 받은 20대의 젊은 직원들도 함께 분사 대상이 됐다"면서 포탈 다음 아고라에서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다음 달 1일 프린팅 사업부를 100% 자회사 '에스프린팅솔루션 주식회사(S-Printing Solution, 가칭)로 분할한 뒤, 지분과 해외자산 등 사업부문 일체를 HP에 양도해 매각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프린터 사업을 매각한 이후에도 국내 시장에 한해 삼성전자 브랜드로 제품을 판매 대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