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화뇌동' 기업구조조정

2016-05-13     이은선 기자

[서울파이낸스 이은선기자] "최근 한 조선부품 기자재 회사에 대한 투자를 검토했어요. 회사 자체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전방산업인 조선 3사의 운명이 불투명하니 결국 진행하지 못했죠."

블라인드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H&Q코리아의 임유철 대표가 효율적 기업구조조정 모색을 위해 마련된 토론회에서 남긴 말이다. 어디까지 튈지 모르는 구조조정 리스크와 낙관적일리 없는 업황 전망 앞에 이른바 '옥석가리기'를 주저하는 투자·채권자들의 고심이 전해진다.

구조조정 추진에 관여하는 정책당국자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시중은행장들과의 협의회 자리에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상 기업까지 신용 경색 여파가 미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이 구조조정 대상 산업에 해당하거나, 연관된 업종이라는 이유로 여신 문턱을 높이고 회사채 시장을 외면할 가능성을 경계한 것이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12일 조선·해운 '문제 기업' 여신이 많은 시중은행장들을 긴급 소집해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대한 평가를 신속하고 냉정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부 참석자들의 입에서는 은행들이 대우조선해양의 여신을 '부실'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 진 원장이 우려를 나타냈다는 내용도 흘러나온다. 그가 강조했다는 '냉정한 평가'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대목이다.

거친 밭에서 옥을 가려내려면 쓸모없는 돌들은 치워내는게 마땅한 수순이다. 은행권과 신용평가사의 기업 평가와 점검에 일면 역할을 하겠지만, 빛을 잃어가는 수많은 옥들 중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치울 것인가는 국가적 합의의 몫이 돼야 한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그럴 의지나 용기가 부족해 보인다. 구조조정 목적의식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나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커녕 대상 산업 종사자들의 각자도생 행보조차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장기 불황이 예고된 해운업과 조선업의 국내 2대·3대 기업은 사실상 유사한 사업 구조 안에서 과잉 경쟁을 거듭 중이다. 철강업계에서는 대기업 자본을 등에 업은 한 기업이 중국기업 만큼이나 시장 공급과잉에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여론의 관심 밖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기업 구조조정은 궁극적으로 국가의 기간 산업을 재정립하는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관계기관 협의체는 기업 구조조정의 시급성이 국민 부담으로 작용할 재정이나 발권력 동원이 아니라 중장기적 성장동력 수립에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