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VK, 386 벤처 신화는 끝나는가?

통합도산법 적용...최종부도-법정관리 신청불구 회생 여지 남아

2006-07-09     박용수



금융권 여신 총865억...농협이 가장 많아

 
중견업체로는 유일하게 자체브랜드로 휴대전화를 생산하던 VK가 결국 무너졌다.
 
최종 부도에 이어 수원지방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VK는 약 3개월간의 실사를 거쳐 법정관리 여부등 향후 진로가 판가름나게 됐다.

한편 증권선물거래소는 VK가 최종부도로 인해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함에 따라 관리종목으로 지정한다고 7일 공시했다.

아울러 VK의 매매거래 정지기간을 이달 11일까지로 연장했다 

7일 VK는 17억 8100만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부도 처리됐다고 밝혔다.
 
VK는 지난달 26,27일에도 각각 35억원과 28억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1차부도처리 됐다가 이튿날 가까스로 어음을 결제 부도를 면한 바 있다.
 
이와관련 VK 채권단은 지난해 4월 시행된 새 통합도산법에 따라 법원에 회생절차 신청을 했으며 법정관리 신청에 따른 대책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졋다.
 
새 통합도산법은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경영권을 그대로 인정해 주도록 방침을 정하고 있어 이철상 VK 사장이 경영권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지고 이 사장의 경영권이 유지될 경우에는 VK 회생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그동안 쌓아놓은 인맥을 통한 비즈니스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고 최근 부품 협력업체들도 지원 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
 
VK측은 700억원 규모의 자재 재고가 제품 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약 20~30억원의 추가 자금만 투입되면면 매출은 바로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VK측은 안산공장과 계열사 매각을 통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외주 생산방식을 통해 원가부담을 줄이겠다는 구체적인 회생방식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지속적인 제조자 설계 생산 계약 체결을 통해 마케팅 비용을 낮추는 한편 국내 시장 마진율이 높은 DNB폰을 조기 출시하면 수익성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한편, VK가 최종부도 처리됨에 따라 향후 진로는 비교적 단순해 졌다. 일단 워크아웃은 불가능해졌다. VK의 선택지는 크게 법정관리, 화의 신청, 제3자 매각, 청산등으로 압축된다.

업계에서는 VK가 모토로라에 매각될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 
 
모토로라는 지난 3월경 VK를 인수하기 위한 실사를 하는 등 높은 관심을 나타내 온 것으로 전해졌으나 부실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단순한 ODM 공급업체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회생과 관련 비관론도 적지 않다.
 
세계 휴대폰 산업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고, 대기업 중심경쟁체제속에서 중소업체가 살아남기에는 경영여건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편 채권단의 여신규모는 기업은행 농협등 10개 채권기관에 865억원이다.
 
농협이 276억원으로 가장 많고, 산업은행 232억원, 외환은행 79억원, 기업은행 66억원, 우리은행 37억원, 기보 36억원 등의 순이다.

이 밖에도 캐피털 등 2금융권과 일반 상거래 채권자들이 갖고 있는 채권 규모를 합치면 VK 채무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은 일단 주채권은행인 농협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농협은 2003년까지만 해도 VK 대출이 전혀 없었으나 VK 본사가 2004년 분당에서 안양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대출 규모를 크게 늘려 주채권은행이 됐다.
 
반면 외환은행은 VK에 대한 대출을 2003년 7월 130억원에서 2004년 91억원으로 줄인 뒤 이를 79억원까지 축소했다. 기업은행도 VK 여신이 점차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VK의 회생 가능성이 남아있는 만큼 채권단의 손실 여부는 아직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편, VK의 부도에 이은 법정관리등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는 데는 유망중견기업이 더 뻗어나가지 못하고 좌절된데 따른 당연한 관심도 있지만, VK의 사장이 대표적인 386운동권출신인 이철상씨라는 점때문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87학번인 그는 1991년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권한대행으로 활동했다.
 
졸업후 민족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정책부장과 부대변인등으로 활동하다가 1997년 9월 '바이어블 코리아'(VK)란 이름의 휴대전화 전지업체를 만들었다.
 
2001년 2차 전지값 폭락등 한차례 위기를 맞았으나 유럽이동통신방식(GSM)휴대전화업체로 발바르게 전환하는 사업수완을 발휘, 위기를 돌파한 적도 있으나 결국 이번에 자금난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박용수 기자 pen@seoulf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