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카드채 기금' 조성 반발

증시침체 환매 등 유동성 바닥 '낼 돈 없다'

2003-04-01     임상연
미매각수익증권 3조원 달해 만기연장도 부담


지난 31일 금감원 주재로 열린 카드채 대책 회의에서 논의된 카드채 기금(채권안정기금) 조성과 관련 증권업계가 유동성 악화를 주장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증권업계는 증시침체 장기화와 환매사태로 유동성이 바닥난 상태에서 기금 조성을 위해 자금을 갹출할 경우 불투명한 증시상황에서 증권사들이 심각한 자금난을 맞이 할 수도 있다며 기금 조성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일 증권사 한 고위관계자는 증시침체로 적자에 빠진 상태고 지난 환매사태로 미매각수익증권 규모가 크게 늘어나는 등 이미 고비를 맞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카드채 기금 조성비를 내라는 것은 경영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소연했다. 또 그는 정부의 땜방식 카드대책이 잇따라 오판으로 들어나면서 오히려 화근을 키우고 있는 상태라고 말해 정부의 무책임한 카드정책을 비난했다.

금감원의 방침대로 채권안정기금이 조성되고 6월까지 만기도래하는 카드채를 만기연장할 경우 증권업계의 대규모 적자는 물론 일부 증권사는 자금난으로 인해 자연퇴출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이라크전 장기화로 증시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증권사들의 적자 규모가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분기 증권업계는 1627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상태며 올해들어서는 이라크전 북핵 등으로 삼성 대우 현대 한화 동원 동양증권 등 대형증권사들마저 월간 적자로 돌아서는 등 이미 수지구조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이에 대형증권사 한 기획담당자는 증시상황이 불투명해지면서 증권사 나름대로 인원감축 지점폐쇄 등의 뼈를 깍는 구조조정을 하는 상태라며 이같은 상황에서 카드사 부실을 책임지기 위해 돈을 갹출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지난 환매사태로 3조원에 달하는 미매각수익증권을 떠안은 증권업계로서는 카드채를 만기연장할 경우 이에 따른 대규모 평가손을 반영해야 하는 등 이중고를 겪어야 하는 처지이다. 특히 LG 삼성 대우 현대증권 등은 지난 환매사태에서 대규모 카드채를 미매각수익증권을 보유하고 있는 알려져 만기연장에 따른 재무적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만기연장과 기금조성 방안이 확정될 경우 적자 증권사가 늘어나는 등 재무적 리스크가 커져 증권주가 크게 빠질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의 정책 실기가 금융주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중소형증권사의 경우 기금조성과 만기연장에 따른 자금 부담으로 시장 자연퇴출 위기에까지 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3분기 수백, 수십억대의 적자를 기록한 B, K, S증권 등은 자기자본 대비 카드채 보유비율이 높아 기금을 조성할 경우 상당한 출혈이 예상된다. 이 경우 자금난에 따른 경영악화로 M&A, 청산 등도 고려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에 업계전문가는 일부 증권사는 SKG 카드채 등 잇따라 터진 대형 악재로 인해 영업용순자본비율이 크게 떨어지는 등 경영상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들 증권사에게는 기금조성과 카드채 만기연장 결정이 퇴출 압력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은행 보험사들도 기금조성에는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나 기금 조성 방안마저 난항이 예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