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불경기 타령

2013-05-23     홍승희

주변에서 보면 위장병의 증세 중 가장 고약한 게 위 무력증이 아닌가 싶다. 식욕은 있지만 먹으면 위가 제대로 활동을 하지 않아 식체로 고생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경제 상황도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재벌들은 조세피난처로 돈을 빼돌리고 재벌 대기업들은 현금을 쌓아놓고 투자는 하지 않은 채 아직 정부의 경제정책을 관망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서민들 눈에는 분명 대기업으로 보이는 대형 중소기업들 역시 정부의 새로운 지원정책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실업종 지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내발 새로운 금융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 염려스러운 단계라지만 경기 회복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 활동을 독려해야 한다는 정부의 조바심이 일어 어떻게든 금융지원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로 역시 지켜보는 입장인 듯하다.

집권 초반 3개월이 되어가자 슬슬 정부 정부의 정책에 딴지걸기의 시동을 거는 듯하다. 갑과 을이라는 표현 자체를 없애겠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결국 기업이 갑의 입장을 포기할리 없으니 경제 위기를 운운하며 서서히 정부를 좀 더 친기업 진영으로 끌어들일 일만 남았다.

“경제상황이 외환위기 수준이거나 더 심각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6~21일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 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70%의 응답자로부터 이런 답이 나왔다고 한다.

이유로는 저성장 기조 고착화(32%), 신성장동력 부재(31%) 등이 꼽혔고 따라서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정책으로 신성장동력 육성(49%), 기업경쟁력 제고(44%)가 제시됐다.

그러나 이 조사의 방점은 그보다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한 우려 쪽에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가장 부담을 주는 정책으로 노동규제 강화(38%), 경제민주화 입법(38%)을 든 것으로 봐서도 그렇게 해석될 소지가 많다.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제, 내부거래 규제 등의 입법화로 기업규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응하는 설문이고 응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응답자의 76%가 이런 규제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고 답했고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해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답은 22%에 불과했다. 기업은 여전히 갑인 것이다.

경제 사회적 위치뿐만 아니라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집권 초기에 목소리를 높여 봐도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성장에 목매달며 기업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게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 아니겠는가.

물론 세계 경제 여건이 녹록치 않다. 유럽 재정위기는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고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여전히 위협적이다. 중국의 올해 성장 전망도 수출기업들에게 만만찮은 도전이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양적완화 행진을 멈추었고 일본의 독불장군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하반기까지 마냥 지금 속도로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올 하반기 중, 늦어도 연말 정도에는 세계 경제가 활성화되는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평형을 유지할 정도로는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제는 기업이 스스로 활로를 찾아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다. 정부가 창조경제를 역설하니 기업들은 정부가 나서서 신성장동력을 육성해달라지만 신성장동력이 될 산업을 발굴하고 개척하는 것은 본시 기업의 몫이다. 그런 산업에 대한 기업의 신규 투자에 정부가 한 팔 거들 수는 있지만 정부가 상 다 차리면 숟가락만 하나 얹으려 해서는 기업 성장은 있어도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사회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도 기업만이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고정관념에서 살짝 비켜서서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가 많은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 한국사회에서 기업 내 일자리의 비중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게다가 수출편의성을 쫓아가는 것만큼은 아니어도 값싼 노동력을 찾아가는 해외투자도 적잖은 게 현실 아닌가. 기업 활동이 왕성해진다고 반드시 국내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보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시대다. 기업의 불경기 타령도 걸러 들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