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지혜로 짚어보는 신용위기

2003-02-08     홍승희
한방에서는 인체를 소우주로 본다. 인체가 우주의 법칙과 동일한 법칙으로 생성, 성장, 소멸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사람마다 타고난 수명이 중도에 장애가 발생해 단축되는 것을 예방하고 장애가 나타나면 이를 제거해가며 소멸의 시기를 늦추는-늦춘다기 보다 타고난 수명을 제대로 누리게 하는- 것이 의학의 역할이라고 본다.

이런 개념으로 인체를 보기 때문에 한방에서는 氣와 血이 제대로 막힘없이 흐르는 것을 건강한 상태라고 한다. 뒤집으면 기와 혈이 어디선가 제대로 소통되지 않고 막혀있으면 건강하지 않은 상태, 즉 病患이 되는 것이다. 혈이 뭉친 응혈현상을 건강의 최대 장애로 본다.

응혈된 곳을 풀어주기 위해 침술이 동원된다. 혈기가 넘치는 것도 문제로 본다.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것 또한 우리 조상들의 삶의 철학기조였다.

지금 한국경제는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돌고 돌아 제대로 소통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고 한다.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가계대출이 위험수위를 넘니마니 하는 등 돈줄이 막힌 사람들이 넘쳐나는 듯 보이지만 분명 한쪽에선 돈을 주체 못하는 듯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뭉칫돈들이 4백조원을 넘나든다는 소문, 투기현장만 나타나면 몰려 다니는 바람몰이꾼들, 시장의 심각한 불경기 속에서도 소위 해외 명품들은 불티나게 팔리며 경상수지를 적자 쪽으로 끌고 다니는 현상 등을 보면 분명 돈이 넘치는 곳들이 있다.

개인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기업들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다. 일부 대기업들은 외부자금 융통의 필요가 거의 없는가 하면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급전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부도율은 크게 높아지지 않지만 부도업체수의 감소보다 더 큰 폭으로 신설법인수가 줄어들어 위축된 경기 상황을 보여준다.

금융은 사회경제의 혈맥이다. 이 혈맥에 응혈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걸 풀지 못하면 단지 금융경색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분명 풀어야 할 뭉친 혈이 있다. 건강한 사회라고 장담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최근의 로또열풍도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몇억원 수준만 돼도 서민들에겐 꿈(?)이 이루어지는 거액이 된다. 그런데 몇백억을 넘어 1천억이 거론되는 당첨금이 걸린 복권이 판매된다니 그 ‘일생에 벼락 16번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희박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너나없이 덤벼든다. 단돈 1만원에 행운을 걸어보겠다는 서민들의 행렬을 꼭 斜視으로만 볼 일은 아니지만 달리 희망을 걸 곳 없는 서민들이 복권 한 장에 일생일대 대박의 꿈을 꾸는 현실은 어떻게 봐도 건강한 상태로 보기는 어렵다. 서민들의 꿈을 걸 대상이 고작 한탕주의식 복권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인 것이다.

실상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미래가 두렵다. 당장의 생계야 어떻게 꾸려간다 하지만 경기의 사이클이 요동칠 때 한치 앞을 보기 어려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는 건 너무 당연하다.

아끼고 저축하면 그래도 미래가 가꿔질 수 있다고 믿던 시절과 달리 현재의 예금 이율은 물가상승률을 크게 밑돌고 있다. 그런 한편에선 언제 다시 부동산 투기자금이 집값을 널뛰게 할지 몰라 불안하다. 이런 불안은 집없는 세입자들만 갖는 게 아니다. 작은 아파트 한채 갖고 착실히 저축하며 집 좀 키워보고 싶은 젊은 부부도, 집 한채가 유일한 재산이고 따라서 노후대책도 그 집 한채에 걸려있는 중년 가장도 모두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은행융자 얻어 내집 한 칸 마련한 서민들에게도 불안은 여러 갈래로 엄습한다. 집값이 떨어지면 융자금 상환독촉에 시달릴까, 이 집이 과연 노후대책이 돼줄까 두루 두렵고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으면 융자금 갚을 길이 막힐까도 두렵다.

젊어서부터 저축한, 혹은 퇴직금으로 받은 몇푼 돈에 노후를 의탁하고 있는 노년의 부부들에겐 떨어지기만 하는 예금금리가 불안을 가중시킨다. 펀드는 아직 수익성이고 안정성이고 큰 신뢰를 못쌓은 상태다. 그래서 노후자금을 리스크 높은 곳에 섣불리 투자할 수도 없는 노년의 불안은 어느 면에서 젊은이들 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이런 두려움이 결국 뭔가 화끈하게 한 건 올려 그 불안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목돈이 마련되면 어떻든 불안한 현 상황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믿음 또한 당연하다.

문제는 이런 수준의 목돈이 걸린 여느 복권과 달리 로또복권의 당첨금은 웬만한 서민들에게 있어서는 세상이 뒤집어질만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당첨만 돼봐라. 당장 회사 때려치우고 여행 떠난다.” “나 월요일날 회사 안나오면 내 퇴직금 너희들이 나눠 먹어라.” 등등의 농담이 사무실을 채우고 로또계, 로또펀드, 로또동호회가 등장하는가 하면 당첨 이후 행동수칙이라는 것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