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 연일 폭등…이미 '전세대란'?
전세가 연일 폭등…이미 '전세대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2개월 째 상승 행진...정부책임론 거세

[서울파이낸스 임해중 기자] 수도권 주택시장의 전세가격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서울 강남과 목동에서 시작된 전세 물량 품귀 현상이 강북은 물론 수도권 및 신도시까지 번지면서 '전세난민'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10일 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 조사'에 따르면 전국 전세가는 2009년 3월부터 현재까지 22개월 째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8·29 대책 이후인 지난해 11월 전국 전세가격은 1.4% 급등했다. 결과적으로 지난해를 통틀어 전국 전세가는 7.1% 올라 2002년(10.1%) 이후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상승률(3.4%)의 2배를 넘는 수치로 웬만한 중소형 아파트는 2년 전보다 대부분 전세가격이 5000만원 이상 상승했고 1년 사이 1억원 이상 치솟은 곳도 흔하다.

최근 정부가 전세난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의식한 듯 도시형생활주택을 추가로 공급하고 전세자금을 낮은 금리로 빌려주겠다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반응은 냉담하다.

도시형생활주택 공급규모와 시점이 명확치 않아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전세자금 대출은 미봉책일 뿐이라는 분석에서다.

전세 수급상황에 대한 부정확한 통계를 비롯해 전세대란을 예고하는 신호가 속속 감지됐음에도 정부의 늑장대응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날선 비판이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세대란이 심화되자 관계자들은 전세가격 상승이 서민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전세난이 단순히 주거문제가 아니라 주민갈등, 금융비용 증가, 가계경제 압박 등 다양한 사회 문제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지목하는 전세난의 가장 큰 원인은 매매시장에 대한 불신으로 전세를 선호하는 수요자들의 불안 심리다.

현 정권의 핵심정책인 보금자리주택은 시들해졌고 재개발·재건축 시장이 답보상태에 머물며 임대주택시장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어 매매시장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겨울 한파 속에 3년 연속 전세난이 심화되며 서민들이 마음을 졸이고 있다"라며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없이 생색내기 정책만으로 전세난에 대응하고 있는 점"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자꾸 치솟으면 결국 부동산 매매시장이 불안해져 전세난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공산이 크다"라며 "서울시가 야심차게 내놓은 시프트 주택마저 효과를 보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시형생활주택 공급으로 전세난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단언했다.

■ 대책 없는 정부, 사회문제로 확산되는 '전세난'

한편 전문가들은 수도권 전세시장이 불안에 불안을 거듭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해법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전세가격 폭등의 근본 원인은 수급불균형인데 민간건설사들이 분양물량을 크게 줄이며 가격 상승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올 들어 관리처분계획에 돌입한 재개발·재건축 현장이 많아지며 주택 멸실이 늘어난 것도 전세수급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허석균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수급 불균형이 원인"이라며 "수도권에서 시작된 품귀현상이 경기 인근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세대란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일각에서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전세난 심화를 부추겼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전세 수급상황에 우려와 함께 고교선택제의 부작용 등 전세가격 상승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설마'하고 뒷짐 지고 있던 정부의 태도가 전세난을 확산시켰다는 여론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최근 정부가 전세대책을 발표했지만 전세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늑장 대응으로 일관한 것이 문제를 더 키웠다"라며 "지난 달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전세난의 심각성을 부정한 이후 내놓은 대책도 미봉책에 그쳐 전세난에 대한 정부책임론이 더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세난 심화에 따른 또 다른 문제는 전세시장 왜곡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가격 상승이 서민경제를 옥죄고 있는 가운데 시장 왜곡이 심화되며 집을 구하는 서민들이 이중으로 고통 받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세가격에 시름하는 서민입장에서 집주인의 횡포는 또 다른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집주인 입맛에 따라 세입자를 고르는 이른바 '세입자 골라 받기'다.

실제로 국내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집을 알아보고 있는 직장인 지모씨(32, 전문직)는 최근 전세매물을 찾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씨는 높은 전세가격이 부담스러워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기로 결정했다.

지씨는 "막상 집주인에게 집을 보러가겠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거부당하기가 일쑤다"라며 "집주인 입장에서는 당장이라도 들어오겠다는 세입자가 있는데 은행업무 절차를 보는 등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지씨가 알아본 해당 포털에는 애완동물은 절대불가, 신혼부부만 이라는 조건부 물건이 넘쳐나며 집을 구하는 세입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기형적인 계약형태도 나타났다. 전세금 상승분을 월세로 전환하는 '반전세', 전셋집을 선점하기 위해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부터 하는 '묻지마 계약', 중개업소에 미리 전화로 전세물건을 찜해두는 '전셋집 사전예약제'도 생겼다. 임차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인 반토막 단기계약, 집이 매매되면 전세계약이 만료되는 '매매조건부 전세'도 있다.

전세금 부담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는 '캥거루족', 아파트 대신 상대적으로 전세가격이 싼 단독주택, 연립으로 이주하는 '아파트 탈출족'도 생겨나고 있다.

아울러 서울 및 수도권 전세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아가자 인근지역으로 이사하는 '전세난민'도 전세난이 심화되며 나타난 사회적 문제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