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 CEO, 박수칠 때 떠나라
<기자수첩> 은행 CEO, 박수칠 때 떠나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김미희 기자] 윤용로 기업은행장이 지난 20일 3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2007년 12월 임명된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한파 속에서도 기업은행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은행을 떠났다.

이날 이임식 이후 진행된 환송식에서는 직원들의 뜨거운 박수가 끊이지 않았고 윤 행장은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국내 은행권에서 최고경영자(CEO)가 이처럼 명예롭게 물러나는 경우는 사실상 매우 드문 일이다. 대표적으로 '50년 금융인'으로 최장수 CEO였던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이 임기(2013년)를 채우지 못하고 지난 10월 중도하차했다.

국민은행의 경우는 2002년 주택은행과 통합 출범 이후 선임된 3명(김정태, 강정원, 황영기)의 CEO 모두가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받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게다가 강정원 전 행장은 자신에게 부여됐던 30억원대의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까지 지난 10일 취소당했다.

박병원 전 우리금융 회장과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은 정권 교체 직후, 정치권 압력에 밀려 취임 1년 만에 옷을 벗었다. 최근에는 C&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 선상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며 불법 특혜대출 의혹을 받고 있다.

이같은 'CEO 리스크'는 해당 은행에도 큰 타격이지만 국내 금융산업의 대외 신인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CEO 선임 및 승계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CEO의 경영성과가 낮을 경우 내부 사외이사나 외부 기관투자가들이 CEO 교체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경영성과가 만족스러운 경우에도 장기 집권에 따른 폐해가 나타나지 않도록 CEO 승계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제도도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사회가 정상 작동해야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의 금융사들이 외부 영향력에 취약한 지배구조 속에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이같은 문제점들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어 다행이다.

우선 은행연합회와 은행권이 각 은행의 전반적인 지배구조를 포괄하는 모범규준을 제정키로 하고 관련 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KB와 신한금융 사태를 계기로 은행의 지배구조를 좀 더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서도 금융사의 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이사회와 사외이사의 권한과 책임 등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안'을 내년 상반기 국회 제출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여기에는 신한사태로 불거진 CEO 리스크와 관련한 대책도 포함될 예정이다.

이때, 경영진을 견제할 이사회 중에서 감사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함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마련하길 바래본다. 그래야만 아름답게 떠나는 CEO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박수 칠 일이 많아질 것이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