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여, 만세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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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픈 정치뉴스를 외면하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 이즈음 유신시절의 악몽이 자꾸 되살아난다. 청와대도 국회도 결코 정치뉴스를 외면하고 살 수 없게 만든다.

유신시절을 초래한 당시 기류를 잠깐 보자. 박정희 대통령은 “행정부는 효율적인데 국회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슬금슬금 가까운 기자들을 통해 풀어냈다. 야당이 반대의견이 있어도 겸손한 아랫사람처럼 말하되 대통령의 뜻이 확고하면 받아줘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북한의 위협은 늘 실제보다 과장되게 국민들에게 전해졌다. 7.4 남북공동성명을 내며 남북관계에 해빙기운을 불어 넣은 지 불과 몇 년 만에 남북관계를 한껏 경색국면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런 연후에 등 돌리는 민심을 향해 긴급조치니, 유신이니 하는 걸 마비된 국회를 통해 얻어내며 반대의견이 나올 수 없는 나라를 만들어갔다. 독립군이 ‘독립만세’를 불러 희망을 북돋우듯 민주주의가 죽어가던 그 시절에 시인 김지하는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며 민주주의의 회생을 열망했었다.

지금은 인터넷 상의 글들이 이런저런 구실로 억압받고 있지만 그때는 술자리에서 박정희 정권을 비난한 것만으로도 ‘반공법’ 위반으로 끌려가 치도곤을 당하고 일생을 망치는 사례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번에 위헌판결이 나온 소위 막걸리 반공법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와 정치를 보는 시각은 40년 전 박정희 대통령과 매우 닮았다. 효율성이 민주주의에 앞선 가치를 지녔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국민이 반대를 하든 말든 대통령의 계획이 곧 국가의 청사진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갑자기 남북관계가 포격이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며 극우적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도 그 시절과 참 많이 닮았다. 따지고 보면 국민의 정부 5년간 1차례, 참여정부 5년간 1차례 있었던 북한의 서해안 포격이 왜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연례행사가 됐을까 궁금할 법도 한데 그 누구도 그런 질문은 피해가려 한다.

그리고는 대대적인 군 인사를 통해 3군 참모총장을 모조리 경상도 출신으로 바꿔놨다고 한다. 아, 이점도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닮았다.

개헌논의가 여당에서 솔솔 나오는 것도 헌법 바꾸기 좋아했던 박정희 대통령과 닮은 꼴로 보인다. 그게 이명박 대통령의 목표였을 터이니 목표대로 잘 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어떻든 올해는 국회가 여느 해보다 일찌감치, 그야말로 후다닥 예산처리를 끝냈다. 난폭하게 힘으로 밀어붙여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켜버린 2011년 예산안 처리에 이명박 대통령은 “다행이다”라는 첫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행동대로 나서 ‘전투’를 치른 초선의 김성회 의원에게 격려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런 대통령을 보며 한나라당은 축하의 샴페인을 터트렸다고도 한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언론에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보도된 한나라당 의원들이 가장 정의로운 의원”이라고 추켜세웠다고 한다. 폭력이 이렇게 미화되는 모습은 부시 전 미국대통령만의 트레이드마크는 아닌 모양이다.

이렇게 신나던 한나라당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민심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를 읽어낼 수 있을까.

야당은 오랜만에 장외로 나가고 그런 야당 뒤통수에 대고 폭력의 주범으로 몰아붙이며 전가의 보도처럼 또다시 양비론을 들고 나서던 친여언론이 싸늘한 민심에 놀란 양 주춤한다. 그런 언론의 태도 변화에 팡파르 소리가 잦아든다. 그리고 하는 일이 거리로 나선 야당에게 역공을 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예산안 날치기 통과에 동참했던 한나라당 의원 일부가 “다음부터는 거수기 노릇 하지 않겠다”고 기자회견을 연다. 이쪽은 그래도 민심을 예민하고 읽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가 머잖은 정치인들이 공천권을 가진 당 지도부와 만만찮은 민심 사이에서 어디를 향해 눈웃음 지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일 터다.

그러나 아직은 충분치 않아 보인다. 시중에선 ‘정부와 한나라당에서 야당 선거운동해주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던데 혹시 등 뒤에서 하는 소리들이라 못 듣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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