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장일치 사회의 비극
만장일치 사회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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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2월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하는데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아울러 끊임없이 금리 조정 시기를 둘러싼 실기 논란과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김중수 한은 총재는 이런 금통위 결정의 배경설명에 문제를 제기하는 여론에 심기 불편함을 솔직히 드러냈다고 한다.

국회는 청와대가 원하는 시간에 여당의원들의 일사불란한 찬성표에 힘입어 유례없이 일찌감치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야당은 저항하는 몸짓만 잠시 보이다 말고 또다시 힘없이 밀리는 모양을 보이는 3년간의 반복적 행태에 그쳤다.

기획재정부는 방대한 분량의 국가경쟁력 강화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스스로 우리의 국가경쟁력이 세계 10위권이라고 자신만만하다. 국가경제의 볼룸이 커질수록 낮아져야 마땅한 무역의존도가 2000년 세계 13위에서 2009년 7위로 높아졌고 고등교육 이수율은 세계 1위라는데 교육투자는 4위에 그치는 등 여기저기 나타나는 불균형은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하다.

참으로 효율적인 사회다. 정부가, 그보다는 청와대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이면에 도사린 문제쯤은 눈감아도 되는 나라다. 이걸 다양한 변수들을 단시간 회의를 통해 조정해낸 뛰어난 능력이라고 높이 평가해줘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한은 금통위는 또 다시 금리동결을 결정한 것에 대해 유럽의 지속되는 재정위기 등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고 한다. 거기 더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 등으로 주가와 환율이 큰 폭의 변동을 나타냈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물가 상승세도 종전보다 한풀 꺾였다는 점을 또 하나의 동결 요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올 여름 지겹게 내리던 비 때문에 치솟았던 채소류 가격이 안정돼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낮아졌다지만 정부가 자랑하듯 경기상승이 지속된다면, 세계경제가 불안정해지면서 원자재 가격이 치솟는다면 물가는 장담할 수 없다. 물론 그렇다 해도 시장에 반응이 나타나는 시기는 내년 초가 될 테니 올해 물가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다.

연말연시를 기해 한꺼번에 물가를 풀어버리고 나면 그 상승분은 올해도, 내년에도 뚜렷이 잡히는 않으면서 슬그머니 충격만 남기고 흔적이 사라지는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싶은 엉뚱한 걱정도 해보게 된다. 계산상 그럴 일은 없을지 모르지만 지난해 연말연시에 벌어졌던 각종 공과금 소동이 어떻게 흡수되어 버렸는지를 보면 무식한 백성 입장에서는 모락모락 의심이 일어난다.

이런 터무니없어 보이는 의심의 바탕에는 고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만장일치 사회의 폭력성이 깔려있다. 금통위를 어떻게 구성하면 반대조차 나오지 않는 회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궁금해 하고 다른 의견을 가졌다가는 매 값을 벌거나 유일사상을 신봉하는 나라에서처럼 사상을 의심받거나 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운, 그런 사회적 폭력성 말이다.

민주주의를 말하고 자본주의를 얘기하자면 만장일치란 폭력적 체제, 제도의 결과물이다. 저마다의 이해가 다양한 사회에서 수많은 변수들을 놓고 각기 다른 해석이 나오는 대신 이미 같은 답을 할 사람들만 결정권을 가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서 정부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참 살기 팍팍해졌다. 어느 정권 하에서든 모든 사람이 다 평등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런 사회적 목표를 공유해나가기 위한 노력하는 정부냐 아니냐의 차이는 존재하는 법이다. 지금은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는 시절인 게 분명하다.

그러니 보통의 직장인이 평생 노력해도 가져볼 수 없는 높은 가격의 서민형(?) 아파트만 양산하고는 부동산 경기가 죽어서 미분양이 발생됐다고 엄살 부리면 정부는 어떻게 건설업체를 지원해줄지 고민하고 나선다. 정부의 밀어 붙이기 식 4대강 사업 뒤치다꺼리 하다가 엄청난 부채의 덫에 걸린 LH공사는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거치며 손실을 보전 받게 됐다.

청와대가 원하면 이제 불가능한 일은 없다. 반대의견을 내던 이들도 힘이 빠졌다. 들을 귀가 없는 상대를 향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뒤통수에 대고 구시렁대는 게 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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