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가난한 자의 법
부자와 가난한 자의 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 어수선한 나라다. 한편에서는 남북의 대치상황이 극한을 향해 치달아 가는 듯 불안하기 그지없는 기류가 흐르는데 재벌 2세들은 또 다른 편에서 날것 그대로의 폭력을 휘두르고는 매 값이라며 돈다발을 던져줬다 해서 평범한 시민들의 가슴을 무너져 내리게 한다. 회사 임원이라는 이들은 그런 재벌 2세의 행패를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니 우리는 지금 노예제도에 매인 시대를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 부자들의 기고만장함은 그들의 행패나 각종 부정 비리에 너무나도 관대한 법 적용과도 무관하지 않을 터다. 이번 경우는 경영자라는 명패라도 붙인 자가 그랬다면 아직 학생 신분일 때부터 그들의 자식들은 자신들만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듯 돈 없는 이들에게 터무니없는 폭력을 휘두르는데 거리낌이 없다.

하기는 그런 자식이 어디 한 대 맞기라도 할라치면 명색이 재벌 총수라는 아비가 폭력배까지 끌어들여 직접 나서서 폭력으로 되갚아주기까지 하는 형편이다. 그들과 그들 가족의 야만이 값비싼 공연의 특별석 티켓과 이름난 작가의 미술품 구매로 포장되면 문화인의 명함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게 또한 우리 사회의 천박한 실상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진면목이라면 보통사람들에게 미래의 희망은 그저 물거품일 뿐이다. 그나마 소위 선진국의 부자들이 보여주는 사회 공동체를 위한 기부행위를 보며 지금 이 나라 재벌 2세들의 막장 행각이 자본주의의 끝이 아닐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평상시 법이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법조항 낱낱을 훑어볼 마음조차 먹지 않고 산다. 개개인들이 직접 자신의 일에 영향을 미칠 게 아닌 한 수많은 법조항을 다 알 수도 없고 그게 어떻게 적용되고 집행되는지 상상해보는 일조차 불가능에 가깝다.

모든 법의 기본 정신을 담은 헌법이 구체적인 법조항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꿈조차 꾸지 않는다. 의심하는 게 불경한 일이기라도 한 듯 그저 법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장삼이사들 사이에 시비라도 붙을라치면 “법대로 하자”고 서로 큰소리친다. 법을 아는 이들이 보면 코웃음 칠 일일지언정.

그러다 문득 아주 하찮은 문서 하나 덜렁 받고나면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고 벌컥 화낼 일들이 종종 생긴다. 오죽하면 참여연대에서 벌인 ‘작은 권리 찾기’ 운동이 그리도 신선해 보였을까.

법을 믿는 것은 그 법이 가난한 자나 부자나 모두 공평하게 대할 것이라는 점을 믿는 것이다. 그 공평함은 산술적 평등이 아니라 최소한의 조건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위에서 책임을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라는 것 또한 평범한 사람들의 순박한 상식이다.

그런 순박한 상식인의 범주에서 보자면 실상은 자주 상식에 어긋나는 법이나 제도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 중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피부양자 자격이다. 피부양자가 되려면 우선 직업이 없어야 하고 연간 소득이 일정액 이하여야 한다. 그것까지는 누구나 인정할 만하다.

그런데 소득 조항을 보면 황당하다. 종합소득 중 사업소득, 부동산 임대소득 또는 이자`배당소득이 연간 4천만 원을 초과하면 직업이 없어도 피부양자 자격이 상실된다. 사업자등록이 있는 자로 제한됐지만 이 점은 그럴 만 하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자로서 ‘사업 및 부동산 임대소득의 연간 합계액이 500만 원 이하인 자’라는 항목에 대해 문의하니 연간 노동소득이 500만원을 넘어도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한다고 답변한다. 취업이 돼 있지는 않아도 사업소득으로 간주돼 피부양자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얘기는 부모가 자산이 있어서 연간 소득이 3천9백만 원쯤 돼도 자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가 되지만 소득이 없는 부모는 연간 500만원만 벌면 자녀의 건강보험 혜택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된다. 즉, 돈 있는 부모는 자녀의 부양을 받을 자격이 있고 재산 가진 것 전혀 없어 용돈이라도 버는 부모는 자녀의 부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런 걸 그저 늙어서 돈 없으면 서럽다고 체념만 할 문제일까. 법이 이러니 부자들이 가난한 자 보는 시선이 난폭한 게 이상할 것도 없어 보인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