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차명계좌' 이대로 둘 것인가?
[기자수첩]'차명계좌' 이대로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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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희 기자
[서울파이낸스 김미희 기자] 최근 신한금융과 한화, 태광, C&그룹에서 터진 비자금 사건은 차명계좌를 통한 '불법적 사익 추구'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지 올해로 17년째지만 비실명 금융거래를 이용한 비자금 조성과 탈세, 자금 세탁 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악행이 되풀이되는 원인 중 하나는 차명계좌로 얻는 열매는 크고 달지만, 그것이 드러났을 때 치르는 대가는 상대적으로 미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008년 삼성특검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임직원 486명 명의의 차명계좌(1199개)로 4조5300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운용했지만, 조세포탈 혐의로만 기소가 이뤄지고 비자금 조성과 사용처에 대한 수사는 형식적으로 끝났다. 금융실명법 위반으로는 처벌받지 않은 것이다. 

현행 금융실명법(금융실명제거래 및 비밀 보장에 관한 법)상에는 차명계좌를 개설한 실제 예금주나 이름을 빌려준 자에 대해서는 처벌이나 과징금 부과를 규정한 조항이 없다. 실명거래 의무를 위반한 금융기관이나 직원에 대해서만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반면 부동산실명법(부동산 실권리자 명의등기에 관한 법률)에서는 위반시, '명의신탁약정'은 무효화하고(제4조) 명의신탁 부동산 가액의 3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제5조)토록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차명계좌 근절을 위한 제도적 개선이나 관련 법 제도의 정비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차명계좌를 많이 활용하는 곳 중 하나가 국회의원들 사무실인데, 누가 법 개정에 앞장서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김영삼 정부 시절, 금융실명법 입법 당시에도 제도 도입에는 한 명을 제외한 국회의원 전원이 찬성했지만, 처벌조항에 대해서는 다수 의원이 반대 입장을 보여 처리하지 못했다.

그나마 삼성특검 이후 차명거래 관련 처벌을 강화한 두 건의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2년 넘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의 입법의지가 그만큼 약하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현실을 너무나 잘 아는 '50년 금융인'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 역시 금융실명법을 준수해야 할 금융기관 임직원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려 지금의 '신한사태'를 자초했다.

때문에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의 제재수단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행법상으로는 금융기관이 혐의거래 및 고액 현금거래에 대해 보고의무를 위반하더라도 허위보고가 아닌 이상 과태료 부과 수준에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금융위원회는 과태료 외에 영업정지 등 제재수단을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또한 위반 정도에 따라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도록 제재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여기에 금융당국에 대한 감사 조치도 함께 이뤄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금감원은 지난해 5월 신한은행 종합검사 때, 라 회장의 차명계좌 개설 정황을 파악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사실이 최근 국감을 통해 드러났다.

이에 이번 신한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에게 어떤 귀책사유가 있는지 낱낱이 밝혀 관련자들에 다한 강도 높은 문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허울 뿐인 금융실명법과 20년 가까이 이를 묵인한 국회, 그리고 감시 기능 하나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금융당국.

최근 차명계좌 종합대책 마련 계획을 발표한 이명박 정부는 너무나 씁쓸한 이 같은 관행을 뿌리채 뽑아야 제2, 제3의 신한사태와 재벌 총수의 비자금 조성이 되풀이되지 않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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