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KDB의 명예
<충무로> KDB의 명예
  • 이양우
  • 승인 2004.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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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KDB)의 자본시장실에 근무하는 차장1명이 같은 은행에 근무하는 동료직원 60여명과 은행밖의 친지들등 총110여명으로 부터 58억원을 모아 돈굴리기를 하다 뜻대로 되지 않자 잠적하는 금융사고가 터졌다는 소식이다.

비슷한 시기에 터진 서해 NNL선상에서 벌어진 남북한군간의 충돌과 그에따른 군의 보고체계문제와 군사기밀유출사건, 20여명의 인명을 앗아간 유영철의 연쇄살인사건등에 가려 사건의 의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시선을 끌지 못했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수 없다.

금융회사 직원에 의한 금융사고는 예전에도 간헐적으로 있어 왔고, 불과 몇개월전인 지난 3월 우리카드 직원의 공금회령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어 그리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건의 진원지가 다른 은행도 아닌 산업은행이라는 사실이다. 은행원이면 다같은 은행원이지 산업은행이라서 뭐가 이상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실상 그렇지가 않다.

산업은행이 어떤 곳인가.
그 위상부터가 여느은행과 다르다.
개발경제시대의 주역으로 한국경제의 대형화를 이끌어온 산파역할을 한 곳이 바로 산업은행이다.
성장중심의 경제구조가 속도나 내용면에서 크게 바뀌면서 그 역할이 예전같지는 않지만 산은은 여전히 지금도 중요한 역할을 맡아오고 있다.
그 역할이 막중한 만큼 산은맨들의 프라이드 또한 대단했다.
요즘같은 시대에 학벌로 규정하는 것은 넌센스일지 모르지만 70년대~ 90년대에는 소위 SKY(국내 상위 3개 대학)출신이 아니면 입사를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인기직장이였다.
산업은행의 조사부는 한국은행의 그곳과 자웅을 겨룰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산은총재자리는 재경부(과거 재무부)장관이 되려는 정부 부처, 주로 재경부 차관급 인사가 현장경험과 경력관리차원에서 거쳐가는 통과의례의 하나로 간주되기까지 했다.
비단, 총재만이 아니다.
간부직원과 임원의 위상이나 역할 또한 여타은행들과 비교할 수없을 정도였다.
수조원에서 많게는 수십조원의 덩치큰 정책자금을 주무르다 보니 임원은 여느은행장과 맞먹고 부서장, 특히 기업금융부같은 핵심부서는 작은 은행의 은행장 부럽지 않은 자리라는 말까지 나돌정도 였다.

바로 산은이 이런 곳이기에 이번 사건이 여느 금융사고와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더더욱 주목할 것은 사건의 성격이다.
이번 사건은 어느 특정인 한 사람의 공금유용이나 횡령이 아니다.
동료직원들 수십명, 그 중에는 부서장급도 무려 6명이나 포함돼 있다.
물론 이들이 그 어떤 범죄행위를 직접 행한 것도 아니고 가담한 것도 아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돈벌이 할 방도가 그리 녹녹치 않은 상태에서 여유돈을 그래도 안심하고 굴려보려는 순수한 재테크 수단 찾기의 결과로 화를 당한 것일뿐일 수도 있고, 그들도 그런 점에서는 희생자 일수 있다.
별 생각없이 시작된 일이 잘못돼 결국 보직해임이라는 치명적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상황에서 당사자들이 느껴야할 억울함이 한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이들중에는 한때 별따기로 까지 비유되던 임원승진대상자도 있을 터이니 그 심정이 오죽하랴.

그러나 사건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결코 그럴만한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세상 수많은 직업중에 돈을 가장 무섭게 아는 직업은 바로 은행원이라는 말이 있다. 남의 돈을 다루는 자리이다 보니 돈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이 그만큼 철저하고 그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은행원들이 갖게되는 돈에 대한 철학은 남다를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때 세간에서는 여행원이 1등 신부감 0순위로 거론된 적도 있다. 돈의 중요성과 돈다루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근검 절약이 부자가 되는 유일한 길로 인식되던 그 시대에는 여행원이 가장 인기있는 신부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돈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아는 은행직원들이, 더우기 베테랑급 은행간부들까지 무더기로 같은 직장의 특정업무를 수행하는 동료직원에게 돈굴리기를 맡겼다는 것이 결코 예삿일일 수 없는 것이다.
은행, 특히 산업은행같은 곳은 부서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수많은 기업정보를 업무상 취급할수 밖에 없다.
이는 결국 기업정보를 이용한 주식투자(내부자 거래)등으로 부당한 이익을 챙길수도 있다는 뜻이된다.
그래서 이들의 돈굴리기 방식은 사전에 인지하고 이뤄졌다면,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일이 생겼을까.

개발경제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자연스럽게 변화된 산업은행의 역할과 위상변화, 그런 상황속에서 산은직원들이 느껴야 했을 과거와 달라진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현실비관적 인식이 그 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산업은행은 여전히 내세울 만한 좋은 직장이고 급여수준도 타직장과 비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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