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와 보험료
전관예우와 보험료
  • 홍승희
  • 승인 2004.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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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약칭 공비처) 신설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이 금융정책의 머리에 해당하는 이헌재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근영 전 금융감독위원장, 그리고 전윤철 감사원장 등이 공직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국민은행으로부터 부설 연구소 고문 자격으로 매달 5백만원씩의 고문료를 받았다며 도덕성을 문제 삼고 있다.
본인들은 실제로 자문 활동을 했고 또 세금도 다 낸 정당한 활동인데 뭐가 문제냐는 입장인데 반해 한나라당 안에서는 말이 자문이지 무슨 자문을 했겠느냐고 의심하는가 하면 재취임을 담보로 한 보험료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전직관료로서 법조계의 전관예우에 해당하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 아니냐고 비난한다.

이에 대해 이들에게 자문료를 지급해온 국민은행은 외국의 예를 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이 주장하듯 거물급 공무원 출신을 자문단으로 많이 확보할수록 외국인투자자들에게 회사를 설명할 때 유리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일테고 또 실상 세계적인 유명 금융기관들이 전직 관료들을 고문으로 위촉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맞는 말일 터이다.
실상 이헌재 부총리의 경우처럼 공직에서 물러나 2년이 지난 후에 자문에 응했다면 그 자체로서 법적인 문제는 없다.
또 고위 공직자 출신들이 지니고 있는 지적 자산을 융통성없는 도덕적 잣대만 들이대 사장시키는 것은 인적 자산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 한국 사회에서 지나친 사회적 낭비이기도 하다.
또 자문료 액수를 두고도 말들이 많은 듯 하지만 그거야 말로 적정 수준을 명확히 선긋기도 어렵고 또 그만큼 가치있다고 판단된다면 더 이상 공기업도 아닌 은행에서 그에 합당한 비용을 쓸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오랜 부정부패의 경험에 멀미난 국민들의 결벽증에 가까운 청렴 요구에 무조건 동조하자는 것도 아니다.
공직자들이 성직자나 수도승도 아닌 바에야 그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도덕적 요구를 하는 것은 오히려 부패청산을 위한 제반 노력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될 우려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적 공세는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를 일소시키기 보다 은폐 기술을 발전시키는데 더 유효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정치쟁점화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박수를 보낼 뜻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제기된 사안에 대해 스스로는 떳떳하다고 주장하는 국민은행의 행보에 충분히 변명하기 어려운 문제점들이 보인다.
우선 국민은행이 이들에게 고문위촉장을 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계약서를 작성한 것도 없다고 알고 있다. 어떤 의무와 권리에 대해서도 명시된 것도 없다.
따라서 한달 내내 회의 한번 참석하지 않아도, 단 한건의 상담도 없었다 해도 문제될건 없었을 터이다. 그래도 매달 자문료는 꼬박꼬박 지급됐다고 한다.
결국 비공식 자문이었다는 것인데 그 비공식 자리에 매달 적잖은 돈을 정기적으로 지불했다는 것은 어떤 변명도 무색하게 만든다.
이건 문서 기준으로만 따지자면 공금유용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닌가.
국민은행이 자신들의 주장처럼 정당하고 떳떳한 일이라고 판단했다면 어떻든 공식화시켰어야 마땅하다. 외국인투자자들에게 회사를 설명하기에 유리하다는 그들의 설명이 맞다면 그들을 고문으로 초빙한 것을 대외적으로도 널리 알리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며 설사 국내에서의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광고까지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명백히 했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런 문서화를 피하려고 한 행위는 결코 스스로 떳떳하다고 여기지 않았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옛부터 선비는 배나무 밑에서 갓끈을 조이지 말고 오이밭에서 신발끈을 매지 말라고 했다. 오해 살 일은 피하는 조심성을 가지라고 당부한 말이다.

그런데 이번 사안이 단순히 오해를 자초한 실수라고 하기에는 국민은행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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