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공포에 휩싸인 여수·광양 산단
발암물질 공포에 휩싸인 여수·광양 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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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칼텍스 등 입주업체들 ‘산업현장 안전불감증’
“인권을 무시한 야만적 행위, 이제는 멈추어야”
 
[서울파이낸스 김미희 기자] 대규모 국가산업단지인 전남 여수·광양 지역의 발암물질 공포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1월 고용노동부의 여수·광양 산단 역학조사 결과 발표는 1996년과 2003년에 이어 세 번째 되풀이된 내용이었다. <본지 7월 2일자 보도 참조>

매번 조사발표 때마다 암 발생률이 타 지역에 비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그 원인도 밝혀졌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그때뿐이었다. 때문에 현재까지도 뚜렷한 해결책 하나 없이 지역 근로자들과 주민들만 불안에 떨고 있다.

이에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산업의학과 전문의)은 본지 인터뷰에서 “석유화학사업장 노동자와 대규모정비작업 참여 건설노동자 모두가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있음”을 지적, 허술한 법체계와 이를 악용하고 있는 여수·광양 산단 내 입주업체들의 안일한 태도를 꼬집었다.

지난달 입법예고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개정안만 봐도 안전규정을 어긴 사업주(발주처)에게 마땅한 법적 근거 없이 솜방망이 처분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고용노동부가 노동자 안전을 위한 산재예방보다는 사업주들 봐주기에 급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현재 법 테두리에서는 여수 산단 내 주요 발주처라 할 수 있는 GS칼텍스와 LG화학 등의 산업현장 안전 불감증을 처벌할 수 없다.

수많은 산재 환자들을 치료하고 관련 사례를 연구해온 임상혁 소장은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 회원국 가운데 부동의 1위”라며 “이제 우리 기업들도 모르쇠·무응답으로만 일관하지 말고 인권을 무시한 야만적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 여수·광양 암 발병…산재 연관성 100%
지난 5월 ‘여수·광양지역 암발생률 비교 보고서’를 발표한 임 소장은 “연도별로 호흡기계 암(후두암, 기관지·폐암 등)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여수·광양의 직업·환경적 요인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직업적 요인에 있어 암 환자들이 일해 온 작업현장에 대한 대대적인 역학조사가 시급함을 강조했다. 여수·광양 산단 내 석유화학 및 플랜트 건설 근로자들의 발암물질 노출이 정부의 역학조사로도 확인된 상황에서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여태까지 못했으면 앞으로 해야 하고, 안할 것 같으면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밝힌 임 소장은 그동안 이 지역에서 발생한 각종 질병들의 산재 연관성을 사실상 확신했다. 실제로 지난 2001년 LG화학에서 벤젠 취급 업무에 종사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조모 씨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여수 지사는 산재 승인 결정을 내린 바 있으며, 지금까지도 여수·광양 산단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이어 “여수 산단의 가장 대표적인 기업인 GS칼텍스를 비롯해 LG화학과 여천NCC 등 산단에서 일하는 사람 중 정비·수리·청소 등을 담당하는 생산직 사람들과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의 암 발생률을 비교했더니 생산직 쪽이 훨씬 높게 나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GS칼텍스 등 입주업체들은 최첨단 공정라인을 자랑하고 있다. 이를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는 임 소장은 “공정라인이 첨단시설인 것은 맞다. 근데 문제는 언제 발암물질에 노출되는가”라며 “정유회사들은 1년에 2개월 혹은 2년에 3개월~6개월씩 청소를 위해 기계를 안 돌릴 때가 있는데 바로 이때 가장 많이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가스가 가득 찬 탱크 안을 청소할 경우 좋지 않은 가스를 다 빼낸 후 들어가 작업을 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 임 소장의 설명이다. 대규모 정비작업 시 모든 기계를 세우고 사람이 직접 들어가 청소와 정비를 하는데, 바로 그 순간에 굉장히 높은 수위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업체들은 화재나 폭발만 일어나지 않으면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입주업체들의 이 같은 과오는 반세기 전부터 계속돼 온 것이었다. 임 소장은 “1960~70년대에 건설된 여수·광양 산단에 사용된 석면(발암물질) 등이 호흡기계에 영향을 끼쳐 장기간 암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상당부분 교체됐다고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곳이 많아 생산직으로 일하는 건설노동자 중에는 석면 폐질환이 높게 나왔다”고 말했다.

■ 발암물질 그대로 노출…안전사각지대
그렇다면 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스스로가 발암물질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란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에 임상혁 소장은 깊은 한숨으로 답했다. 너무나 기본적인 지침 전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임 소장은 “근로자의 알권리가 전혀 충족되고 있지 않다. 화학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물론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나 화학사업장 건설과 유지보수를 맡는 플랜트 건설노동자들에게 여기서 다루게 될 물질이 무엇이고 어디에 나쁜지 등이 전달되지 않는다”며 “아침에 모이면 안전사고에 관한 교육을 좀 하고 작업허가를 내주는 데, 이 때 근로자들은 작업환경측정도 실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이 일하는 곳에 각종 발암물질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작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즉, 발주처가 건설업체에 청소와 정비 등 도급을 주면 무방비 상태로 들어가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유해한 물질이 저장 이동되는 탱크 파이프 등을 정비할 경우, 그냥 쑥 뽑아버려 가스에 노출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여기에 보호구 착용은커녕 단 하루라도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강도 높은 작업량을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업무지침과 작업환경 측정 등이 당연한 것 같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단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그나마 본청에 노조가 있는 LG화학 등은 노조 측 요구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GS칼텍스를 비롯해 대다수 업체들은 아직도 이를 무시하고 있다.”

이 모든 사태에 대해 임 소장은 “가장 큰 책임은 이를 방치해온 정부와 해당 입주업체에게 있다”며 “이제부터라도 정비작업 보건관리계획을 수립하고 대정비 기간에는 작업환경을 측정하는 등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자들을 발암물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발주처의 책임을 강화해야 함은 물론 정부의 관리 감독도 더욱 철저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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