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허상
2-허상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3.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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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성장은 아무런 새로운 가치의 창조 없이 오로지 생산요소만을 집중적으로 투입한 결과에 불과하다.”-폴 크루그먼 MIT교수.
여기서 생산요소란 거대한 금융부채 덩어리의 다른 표현이다.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 부도.
은행여신 기준 9위, 자산 기준 14위. 자본금 9백억원, 총부채 5조3천2백51억원 (64억달러). 이 사건으로 현직 장관 1명, 은행장 2명, 국회의원 4명이 구속됨.



봄이라고는 하나 날씨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녹지 않은 잔설이 군데군데 남아 지저분한 도시를 더 추하게 만들고 있었다.
충석은 오래된 만큼이나 고루해 보이는 대성은행 본점의 육중한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자동문으로 바꾸어도 좋으련만 전통을 지키려는 것인지 아니면 낡은 건물 이미지에 맞추려는지 문만은 충석이 은행을 출입할 때 드나들던 몇 년 전과 변함이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김 기자님이시죠. 상무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퇴근시간이 임박한 이 때쯤에는 임원실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였는지 아니면 미리 비서에게 인상착의라도 말해 놓았는지 충석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비서가 단정적으로 말하며 상무실로 안내한다.

“어서오시오. 김 형. ‘희정’으로 직접 오시지 않구.”
김 대평 상무는 충석을 기다리며 명함이라도 정리하고 있었는지 테이블 위에 잔뜩 널려 있던 종이쪼가리를 주워 담으며 반색을 한다.

“옛날 생각이 나서요. 그동안 별 일 없으셨습니까.”
“숨을 쉬고 있으니 사는가 합니다. 요즘 은행 생활이라는 것이 김형도 알다시피 살얼음판 이라서요.”

비서가 찻잔을 들고 오자 우중충하던 방의 분위기가 밝아지는 것 같았다.
“대단한 안목이십니다. 이런 미인을 가까이 두고 계시다니.”
단순한 립서비스만은 아니었다. 커피잔을 내려놓는 김상무의 비서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다시 돌아보게 만들만큼 훤칠한 미인이었다.

“미스 김. 인사드리지. 대한경제 경제부의 김 충석 차장이시고, 이쪽은 비서실의 김 진숙씨.”
진숙이라 불린 비서는 충석의 실없는 농담에도 전혀 불쾌한 내색 없이 미소로 답하고 자리를 피해 준다.
“자, 미인은 나중에 또 보시고 갑시다.”

요정 ‘희정’은 은행에서 별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으나 퇴근시간의 교통은 꽤나 막히는 편이어서 둘이서 술상을 마주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요즘 부도 위기에 걸린 기업들이 많던데 대성은행은 별일 없습니까.”
충석이 마치 강 건너 불 이야기하듯 한마디를 던지자 김 상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되받았다.

“사실 오늘 아침 대한경제의 ‘동우그룹 자금경색’관련 기사로 은행이 하루 종일 좀 분주했습니다. 요즘은 언론에서 하도 앞질러 가는 바람에 죽을 맛입니다. 당하는 기업이야 더하겠지만 돌아오는 어음 막아줘야 하는 주거래 은행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사실 이 자리도 정치부에서 1주일쯤 뒤에 써도 될 기사를 너무 앞질러 쓴데서 나온 파장을 평소에 알고 지내던 김 상무와 충석이 부드럽게 해결하고자 만든 것이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최근의 재벌기업들의 자금경색을 보도하는 언론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갔다.

1997년 들어 언론은 경제문제에 지나치게 앞질러 가고 있었다. 보도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기본적인 보도의 원칙이며 기준들이 마구 무너지고 있었다.

기업자금사정과 관련된 기사는 실상이야 어떻든 반드시 은행에서 부도전을 떼고 난 다음에 보도하는 것이 그동안의 원칙이요 관례였지만 1월 한보사건이 터지고 난 다음부터는 이런 원칙이 무시되고 있었다. 한보사태가 정치사건으로 비화되면서 정치부 기자들이 먼저 이런 관례를 깨고 어느 그룹의 자금이 달린다는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계열기업의 이름까지 박아 보도하기 시작했다.

결국 경제부 기자들도 이런 행태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신문사마다 경쟁적으로 재벌기업 자금 경색 기사를 써대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번 걸리면 기업이나 은행 모두 곤욕을 치루지 않을 수 없었다. 신문에서 시작된 이런 무책임한 보도 행태는 나중에는 방송에까지 이어져 공영방송에서까지 속보 경쟁을 벌였다.

가뜩이나 자금사정이 어려운 기업이 한번 기사화 되면 결국 즉각적인 부도로 몰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보도가 없었다면 밤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음을 막을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언론에서 떠들고 난 후에는 백약이 무효였다. 이런 일이 최근들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1997년의 한국 언론에는 보도 윤리나 원칙이 상실되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정부부처에서 엠바고를 걸고 사전에 배포한 보도자료도 기사화 되기 전에 시중에 통째로 복사되어 흘러 다니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정부는 언론이 기업을 망하게 한다고 비난하고 언론은 정경유착이라고 반박했다. 정부와 은행, 기업 모두 1997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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