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되지 않는 재화
순환되지 않는 재화
  • 홍승희
  • 승인 2004.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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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재화는 순환과정을 통해 그 규모를 키워가며 사회적 부가가치를 높인다.

따라서 활발한 유통만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성장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의 재화는 움직임이 매우 둔화된데다 계속 움직임을 더 줄여가고 있다.

이대로는 경제가 활기를 잃는 것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도 활력을 잃게 된다.

고인 물이 썩어가는 것과 같은 현상은 이미 구석구석에서 감지되기 시작한 지 꽤 됐지만 이제 여러 지표상으로 그런 사실이 확인돼 가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 1분기 자금순환현황을 보면 기업자금 부족액이 4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에 개인부문의 잉여자금은 5년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한편으로는 개인부채 규모가 계속 불어나며 가구당 2천945만원으로 사상최대에 이르렀다. 1인당 935만원이다.

전체 개인부채는 485조 5천억원으로 전분기보다 2조8천억원이 늘었다.

꾸준한 임금상승으로 취업자의 소득이 늘어도 실업자수가 증가해 가구당 평균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형편이다.

계층간 격차는 더 벌어지며 아래쪽으로 갈수록 가구당 소득은 오히려 감소하는 상황이다.

개인부문 잉여자금 증가는 소득이 늘어서가 아니라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여서 오히려 전체 경제상황의 적신호로 읽어야 한다.

그만큼 활력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여전히 개인대출에 보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나 보험사 등에서는 여유자금 운용을 위해 본사 차원에서, 혹은 영업점 차원에서 주택담보대출에 적극적이다.

자산운용을 해야 하는데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2금융권에서 앞으로 이 부분에 더 적극성을 띨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소비를 줄여나가는 개인들이 주택 신규취득 등 재산증식 차원에서의 대출에는 움츠러들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금융권에서 대출에 적극 나서다가 대출자금이 생산성없는 가계운용자금 등으로 전용되며 자칫 부실대출로 이어질 위험성도 커진다.

기업부문의 돈가뭄은 주로 중소기업들의 문제일 뿐 대기업 가운데는 투자유예로 오히려 잉여자금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곳들도 적잖아 보인다.

이런 잉여자금이 이제까지는 주로 법인 부동산 매입과 국내외 채권 매입 등으로 나름대로 활용됐다면 근자에 이르러 이같은 자금운용도 여의치 못해 보인다.

이 자금이 생산부문 투자로 속히 되돌아 와야만 한다. 그래야 경제에 활기가 생기고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다시 개인과 가계로 흘러들어간다. 그 때가 되면 사회적으로도 활력이 되살아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기업들은 머뭇거린다. 마땅한 투자 아이템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들을 종종 듣는다.

왜 대기업들이 투자대상을 찾지 못할까. 한창 잘 나갈때는 미래를 위한 내실있는 연구개발에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볼륨키우기에만 급급했다.

연구개발 투자를 한다해도 장`단기 프로젝트를 균형있게 수행하기 보다는 당장 꽂감 빼먹듯 빼먹을 단기 기술개선 차원의 연구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이제 그 결과 독자적인 기술개발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세계 경쟁기업들보다 우위에 설만한 기술을 갖추지도 못했다. 그러니 장기적 비전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손놓고 변해가는 세계시장을 쳐다만 볼 것인가.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속담이 있지만 그나마 소를 잃은 후에라도 외양간은 고쳐놔야 이후 다시 소를 길러도 기를 것이 아닌가.

이공계 위기 운운하게 만든 데는 연구개발에 소홀했던 대기업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이제라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연구개발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머잖아 추월할 기세로 우리 뒤를 바짝 쫒고 있는 중국에 앞자리를 쉬이 내주지 않고 시장우위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기업도 살고 사회도 살 길은 늦더라도 제대로 된 길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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