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
  • 홍승희
  • 승인 2004.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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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들이 미수금 우선충당 문제를 일단 덮어두고 펀드 수탁업무를 우선 재개키로 함에따라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상황만은 피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자산운용사와 수탁은행들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킨 근본적인 문제는 손도 못댄채 응급 봉합에 급급, 앞으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불씨를 남겨뒀다.

이번 사단을 일으킨 장본인은 일단 표면상으로는 수탁을 거부한 시중은행들이지만 내용을 놓고 보면 당초 자산운용업법 제정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대처했어야 할 재경부의 실책에서 더 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투신사 등 자산운용사들이나 수탁은행들 간의 갈등은 현재와 같은 법 조문으로는 발생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마땅히 관련 이해당사자 모두가 법 제정 과정에 깊숙히 간여해 각각을 규정하는 관련법들과의 조문상 상충 여부, 각 취급기관 관련법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 여러 발생 가능한 문제들에 대해 검토하고 조정, 조율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한다.

법 제정의 주체인 재경부가 관련기관들 간의 충분한 공방과 조율이 이루어지도록 장을 마련하고 스스로는 그 논의되는 과정에서 지켜보고 방향의 오류를 시정하고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수평적 관리자 역할을 했다면 이번처럼 법이 시행되자마자 조문상의 문제점이 노출돼 법률을 무력화시키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해 발동되자마자 시행령을 개정해야 하니마니 하는 소리는 튀
어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와 별반 다를게 없이 재경부는 스스로 금융기관들의 상위기관으로 기능하며 이끄는 대로 따라오라는 식의 오만한 자세를 유지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물론 투신사 관계자들이 법 제정 과정에 참여했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으나 수탁기관인 은행들을 제외시켰기 때문에 은행 관련 법이나 여타의 은행 현실과 충돌을 일으킬 상황을 충분히 예견하고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투신사들 주장으로는 은행들 스스로가 적극적 자세를 갖지 않았다고 비판하지만 어찌됐든 재경부가 스스로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관련 기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어야 옳았다.

물론 은행들도 소극적 자세로 뒷짐지고 있다가 뒤늦게 딴지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은행원들 입에서 툭하면 관치를 비판하는 소리들이 나오지만 솔직히 그 관치에 길들여져 스스로 익숙하고 편한 관치를 즐기는 일면은 없는지 반성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 이번 관련법 제정 과정 역시 관치에 익숙한 은행들의 소극적 태도가 드러난 결과는 아닌가 되돌아 봐야 할 듯하다.

한국에서 각종 법들이 제정 과정에서 각각의 이해당사자들 의견을 조정하지 못한채 이쪽저쪽 끌려만 다니다 누더기 법이 되거나 법이 제정되자마자 개정 작업에 착수하고 끊임없이 시행령 상의 오류가 발견돼 손질되는 등의 행정적 낭비는 부지기수다.

정부 각 부처가 군림하는데 익숙하다보니 조정능력은 오히려 퇴화돼 동화 끌려가는 당나귀의 귀얇은 아버지와 아들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몰아부치다 상호 충돌하는 법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 사회의 수평적 리더십은 지도자의 인간적 약점이 그 지도자에게나 해당 조직에게나 그 다지 큰 위험이 되지는 않는다. 그 약점을 조직 내부에서 흡수,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림하는 수직적 리더에게는 인간적 약점이 당사자의 권위에 곧바로 흠집을 내고 조직은 그로 인해 큰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군림하는 자는 결코 약점잡혀서는 안된다.

21세기 리더십의 특징을 흔히들 수평적 감성적 리더십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아직 그같은 리더십에 익숙치 않아 그런 지도자에게서 오히려 혼란을 느낀다.

정부 부처 관료들은 여전히 군림하기에 익숙하고 산하 관련 기관들도 여전히 수직적 관계에서 책임을 피해가는 것이 편하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불평하고 비난한다.

이제 이보다는 좀 더 생산적인 21세기 리더십에 서로서로가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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