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급진개혁과 교각살우
거래소, 급진개혁과 교각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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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기덕 기자] 한국거래소에 거센 개혁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750명의 거래소 전체인원 10% 감축, 임원임금 50% 이상 삭감, 직원 임금 5% 삭감, 중복부서 통폐합, 부서장 40% 교체, 임원급 인사 9명 사표수리, 경비성 예산과 복리후생 축소, 출근시간 단축 등에 이르기까지 지난해 말 선장 자리에 올라 앉은 김봉수 이사장은 취임 후 한달도 채 안돼 이처럼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18일 그동안의 방만경영을 사유로 임원 18명이 제출한 사직서 중 절반인 9명의 사직서를 하룻만에 수리하며 강도높은 개혁의지를 내비쳤다. 시장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거래소  유가시장본부장 및 파생상품본부장 등의 사표가 전격 처리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오랫동안 민간 금융기관에 몸담고 있었던 김 전 키움증권 사장이 '혁신과 개혁'이라는 기치아래 거래소를 환골탈태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신도 부러워 할 직장'이라고 칭송(?)받던 거래소 임직원들에게 '임원기피증'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거래소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뒤 임원 임기 및 정년보장이 힘들어진데다 매년 경영계약서를 쓰고 평가를 받아 성과에 대한 연대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강도높은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신임 김 이사장에게 눈에 띄는 '결과물'을 내놔야한다는 부담도 큰 상황이다.

문제는 이같은 급격한 인사변동으로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 경영전문성 및 업무의 연속성이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증이 오히려 업무처리를 '주마간산'에 그치게 해, 증권회사들과 투자자들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장의 안전판역할을 해야하는 거래소의 생산성을 저하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욱이 최근 단행된 임원 인사에서 관료출신이 대부분 살아남았다는 점 역시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실제, 지난 인사개편때 사직서를 제출한 5명의 본부장급 임원들 중 사표가 반려된 3명은 모두 관료출신이다. 반면 거래소에 10년넘게 몸담고 있던 내부출신 2명은 사표가 수리돼, 한동안 '신 관치금융'이라는 웃지못할 신조어 또한 증권가에 나돌았다.

물론 그동안 관료처럼 시장에 군림하며 권력의 무풍지대로까지 불려온 거래소의 개혁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급격한 개혁은 출혈이 뒤따를 수 있다. 대화와 타협이 배제된 섣부른 개혁은 자칫 증권시장의 심장부인 거래소에 불협화음이라는 부메랑이 돼 날아 올 수 있다. 소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이다.

아직은 단기적으로 눈에 보이는 인사개편에 매달리기 보다는, 점차 파이가 커지고 있는 자본시장의 건전한 육성과 투자자보호를 장기적인 서비스에 집중해야 할 시기이다.

아직 거래소는 갈 길이 멀다. 지난해 자본시장법 이후 거래소는 올해 야간선물시장 개설 및 해외이머징 시장진출, MSCI지수 편입 등 어느때보다 그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조속히 내부정비를 완료해 앞으로 세계 유수 거래소들과 어깨를 나한히 할 수 있는 자본시장의 '총아'로 부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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