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누각 피해가기
사상누각 피해가기
  • 홍승희
  • 승인 2004.03.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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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률이 5개월 연속 상승하며 3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소란스럽다. 그런 한편에서는 지난 2월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6개월 연속 20억 달러대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고 대견해 한다.

이런 수치들은 그동안의 한국경제 구조 이해의 틀로는 분석하기 애매해 보인다. 성장론자들의 주장대로 하자면 수출이 활발해지면 고용이 확대되고 그에 따라 내수경기도 살아나야 옳다.

그러나 계속되는 수출호조에도 실업률은 오히려 높아지고 내수경기도 쉽사리 살아나지 않아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만 간다.

무언가 이제는 분석틀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현재 나타나는 현상이 수출주도 경제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소위 말하는 고용없는 성장으로 가는 조짐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라도 위험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구석이 남아있다. 총 760가구에 불과한 주상복합아파트 분양에 청약자 27만명, 청약금 8조원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다른 내수부문은 다 숨죽이고 있는데 부동산에는 경기(驚氣)를 일으킬만한 과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병증(病症)이라 볼 수밖에 없다.

인체의 어느 한 부위에 염증이 생기면 초기에는 발생부위에만 과도한 열기가 나타나지만 시간이 경과하면 몸 전체로 열기가 퍼지며 체온이 급상승한다. 지금 한국사회는 일단 발생부위로부터 열기가 몸 전체로 퍼져나가기 직전 상황은 아닌가 우려된다.

과열 부문이 생기면 주변의 모든 여유자금들은 그 한 곳을 향해 치달려 가고 끝에 가서는 뒤늦게 쫓아갔던 사람들이 빈손 털고 나오는 악순환을 지난 시절 30년 이상 경험해왔다. 그러다보니 큰 돈과 정보를 움직이는 소수에게 사회적 재화가 점점 집중되는 현상에 갈수록 가속도가 붙어 사회적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정부의 부동산대책이라고 나와봤자 늘 살아움직이는 자본의 뒤를 쫓기에 급급해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그나마 그동안의 고단위 처방에 익숙한 사회에서 웬만한 대책은 이미 내성이 생겨버린 상태라 약발이 듣질 않는다. 딱히 마땅한 사회적 통제 수단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그런 수준의 대책마저 기득권층의 이해와 자신들의 기득권 방어에 급급한 정치권에서는 색깔론까지 들먹이며 과도하다고 언성을 높이는 실정이어서 더욱 딱하다. 현재와 같이 기득권층의 목청이 커져가면 결국 한국은 그동안 눈길 내리깔고 바라봤던 아르헨티나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추운 지방에서는 자연상태에서 호수가 썩는 경우가 없지만 더운 지방에서는 썩는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더운 지방에서는 비바람과 같은 외부적 영향이 미치지 않으면 호숫물의 대류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간다는 중등과정 물리 상식을 떠올려보면 쉽게 답이 나올 것이다.

사회적 통제가 먹히지 않는 소수계층이 자리를 견고하게 잡은 사회 역시 더 이상 계층간 소통은 불가능해지고 대류가 일어나지 않는 호수의 물처럼 썩는 일만 남게 될 것이다. 계층간 장벽이 굳건한 사회들에서 이미 발견된 현상들이다.

한국사회는 이제 더 이상 자본만을 위한 자본주의를 고집해서는 사회 자체가 건강하게 존속해 나가기 어려운 단계로 접어드는 듯하다. 이념을 위한 조직 작동원리에 매이기보다 조직 자체의 건강한 생존을 위한 실용적 선택이 아쉬운 시점이 된 것이다.

소비기반 없는 내수경기 진작은 불가능하고 그걸 인위적으로 조성하려다 최근 몇 년간 거푸 실패를 경험해 본 한국사회다. 이제 틀 자체를 바꾸는 노력없이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제발 색깔론 따위는 잊자.

이제는 진정으로 이념에서 해방되자. 그리고 사회적 합의에 의한 실용적인 선택이 가능한 사회를 구축해보자. 근육질의 힘싸움 대신 진정한 공존과 상생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논쟁을 시작하자. 그러기 위해 우리는 또다시 출발점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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