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
국제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
  • 홍승희
  • 승인 2004.03.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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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미국發 패닉인가.

달러화 약세로 인한 세계시장의 교란현상이 당초 예상 이상으로 심각해 보인다. 아직 성급한 우려이기는 하지만 이대로 더 가다가는 한국경제도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싶은 걱정이 앞선다.

지금 국제원자재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고 있다. 세계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발표가 기름을 붓기는 했지만 이미 달러화 약세로 인해 그같은 시장 동요는 시작된 상태였다. 이미 지난 2월 두바이 가격 기준 국제유가는 9개월 전인 2003년 5월에 비해 19%나 상승한 상태였던 것을 보면 현재의 원자재 가격 파동은 감산정책보다 달러 약세에 의해 촉발된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달러 약세화 전략에 맞서 일본마저 엔화 하락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외환시장 개입에 미국이 제아무리 비난을 퍼부어도 요지부동인 중국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각국이 환율 방어에 적극 나서는 상태다.

그런 와중에 최근 들어 순채권국으로 돌아선 한국의 외환정책은 다소 불안해 보인다. 지난해 말 현재 한국의 대외채권 규모는 2천266억 달러로 채무액 1천5백98억 달러에 비해 668억 달러가 더 많았다. 이같은 현상은 그 자체로 좋다거나 나쁘다고만 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이 달러화 약세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해외채권이 계속 늘어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는 다시 숙고해봐야 할 듯 싶다.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대외채무를 투자로 전환시키기 위해 정부가 벌여온 정책은 반드시 필요했고 또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것은 고래의 상식이다. 정책당국자들도 그같은 상식을 늘 기억하고 정책방향을 유연하게 변화시켜 나가는 자세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방향이 결정되면 무조건 달리고 보는 식이 아니라 가다가 상황이 바뀌면 진로를 변경하는 유연한 정책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만 특히 경제는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때 그때의 상황을 통제하는 능력이다. 과거완료형 원칙에 사로잡혀 미래지향적 유연성을 상실하는 일이 한국의 지식인 계급사회에서는 전통처럼 이어져 왔지만 적어도 실용성을 우선해야 하는 경제관료들만은 그래서는 안된다. 몇 년 전에 유용했던 정책적 관점이 현재 시점에서는 오히려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지금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성장배경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중국정부의 유연성이다. 그들의 추격에 숨가쁘게 쫓기고 있는 우리는 특히 그들의 유연한 정책자세를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사실상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차근차근 자본주의화해 가는 상황을 눈여겨봐야 한다.

등소평의 흑묘백묘 논리가 등장한 이래 꾸준히 한걸음씩 그들은 이념적 껍질을 벗고 원칙 대신 현실적 실용성을 택해 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걸 단순히 자본주의의 우월성으로만 치부하고 자본주의화에서 앞선 한국이 자만의 근거로 삼는다면 그건 또하나의 사고의 화석화에 불과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이념이 아니라 스스로 취약한 것을 고치기 위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놓고 최선의 실용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다.

어쨋든 몇 년째 경기불황을 겪고 이제 겨우 그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나 싶은 시점에서 현재 국제원자재 가격 폭등은 심각한 위험이다. 원자재가격의 상승 자체야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수단들은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걸 위해 정책당국이 존재하는 것이라 본다.

물론 정부가 이 문제에 손놓고 있을 리는 없다. 다만 그 대응이 너무 대증요법에만 치우쳐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원칙에만 사로잡혀서도 안되겠다는 생각에 새삼스레 문제를 들춰내 살펴보는 것 뿐이다. 이것이 진정 노파심이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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