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후에는 뭘 먹고 살지?
3년 후에는 뭘 먹고 살지?
  • 홍승희
  • 승인 2003.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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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망이 불투명하다, 체감경기가 형편없다고 아우성이 터져 나오지만 대기업들은 아직 형편이 좋다. 특히 지난해 투자가 부진했었기에 올해는 지난해에 비하면 투자도 대폭 늘릴 것으로 보인다. 투자비용 조달도 자체 자금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대기업들의 고민은 당장의 수익이 아니라 향후 주력사업을 어떻게 영위해야 하느냐에 집중돼 있다고 한다. 기업의 영속성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템이 발굴돼야 하나 현재 국내 대기업의 볼륨에 맞는 아이템이 찾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대기업들의 고민은 곧 한국 경제의 미래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이어서 국가적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계획경제 시절에는 웬만한 신규 아이템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제시하고 정책금융으로 밀어주면 기업들이 수동적으로 따라가며 성장의 과실을 따먹는 식이었으니 기업 입장에서 특별히 고민할 게 없었다. 그런 시절이 다 지나가기 전에 스스로 아이템을 개발하고 투자했던 기업은 이후 승승장구했으나 기존 체제에 머물러 있던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됐다.

삼성이 처음 반도체에 눈을 돌리고 과감한 투자에 나섰을 때는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높았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무모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삼성은 반도체 덕분에 지금껏 그룹 전체적으로 큰 수혜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을 이끌고 나가는 역동적 심장 구실을 하고 있다. 이후 한국은 세계적 반도체 생산국이 됐고 삼성 외에도 여러 기업이 반도체 혹은 관련 정보통신사업으로 급성장하는 경이를 체험했다.

대규모 투자에 의한 대량생산에 의해서만 경쟁력이 확보되는 메모리반도체는 어느 면에서 과거 계획경제 시절의 끝물에 대두됐던 중공업 중심 경제체질의 연장선 위에 있다. 국내 기업들의 대량 물량공세에 세계적 반도체 업체들이 비메모리 부문으로 눈을 돌리고 소량 다품종 시장을 개척해 나갈 때 이미 대규모 투자를 해둔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여전히 메모리반도체가 가져다주는 큰 수익에 안주해 있었다. 메모리반도체 자체로도 기술 고급화를 위한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이제 상황은 변하고 있다. 나노기술의 등장으로 반도체산업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는 듯 싶지만 이 부분에서 그동안 뒤로 밀리던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선두로 치고 나오는 양상을 보인다. 비메모리는 이미 근 10년전부터 장기적 계획을 갖고 이 분야에 주력해온 세계적 기업들이 입지를 확실히 구축하고 있어 틈새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21세기를 앞둔 1998~9년부터 21세기의 패러다임이 20세기와 어떻게 다를 것인지를 논의해왔지만 국내 기업들은 이런 시대적 변화에 둔감한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제조업 중심, 대량 물량주의 사고에 머물러 있었다. 사고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들은 여전히 2차 산업의 틀 안에서만 사고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70년대 이후 1차 산업에서 빠르게 2차 산업 중심으로 국가 산업구조가 바뀌었듯이 이제는 3차 산업 중심으로 바뀌어가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런 한국 경제체질의 변화 필요성도 감안하며 미래 산업의 방향을 잡아나가야 한다.

3~5년 뒤에는 뭘 먹고 살지를 걱정은 하지만 변화된 상황을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로 보지 못하는 듯해 염려스럽다. 언제까지나 한두개 주력제품에 의존하는 단순한 상품구조로 지탱해 나갈 수는 없다. 물론 대기업의 금융산업 진출 시도는 이런 환경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제까지의 과정에서 재벌그룹들이 계열 금융사를 사금고화한 폐단만 없었다면 대기업들의 금융업 진출이 지금과 같은 저항에 부딪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시기적으로 어느 정도 그 필요성을 공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재벌체제가 공고한 상황에서 여전히 재벌그룹 차원에서의 금융업 진출은 지지를 얻기 힘든 한계가 있다.

21세기 산업환경은 정규군과 게릴라가 공존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 맞춰 대응해 나가야 한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국가적 주력산업 한두개는 분명 살아남을 것이다. 그런 대규모 투자에는 재벌체제가 어느 정도 효용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개의 기업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잘게 쪼개진 시장수요에 맞춘 다양한 상품구성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재벌그룹과 대기업이 한덩어리인 상황에서 그 체제의 유연성 부족이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할지 여부다. 소량 다품종시대에 재벌체제는 이미 그 효용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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