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의 모럴해저드
금감원의 모럴해저드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4.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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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적으로 금융기관이나 임직원에 내린 경고조치 집계현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어떤 기자도 요구한 적이 없고 보도된 적도 없어 공개하기 어렵다”. 자료에 대한 비공개 규정은 없지만 그때그때 내려진 조치를 굳이 모아서 시장에 재인식시킬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기자가 지난해 금융기관에 내려진 경고 등 집계현황을 요구한 데 대한 금감원측의 입장이다.

연말이나 연초가 되면 언론 보도를 통해 한해 일어났던 굵직굵직한 사건에 대해 총정리 기사가 나온다. 이같이 지나간 사건이 다시 보도되는 것은 무엇보다 그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갖거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종종 금융감독당국이 모은행 혹은 은행장 등 고위급 경영진들에게 내리는 경고조치를 보게 된다. 이는 금융종사자가 시장의 룰을 위반했거나 사익을 위해 공익을 저버렸을 때 내려지는 조치다.

하지만 시간이란 묘약이 있어 이 같은 기억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진다. 수백억의 부실채권을 초래, 주주이익의 손실과 시장 혼란을 야기했던 행장이나 기관에 대해 우리는 쉽게 무뎌진다. 총정리 기사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해 국내 금융기관들은 감독당국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경고나 주의조치를 받았다. 사실상 금융기관 경영진이 감독기관으로부터 문책경고 등을 받았다는 것은 금융업에 부적절한 인사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현행제도는 임기를 채우고 퇴임한 후 재취업을 일정기간 금지하는 형태로 전혀 실효성이 없는 상태다.

이 가운데 금융기관의 건전성 확보와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 노력해야 할 금감원이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 정기 및 수시검사를 통해 내려진 경고조치가 단발성에 끝나 실효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이에 대한 집계현황 공개조차 꺼린다.

이제는 금융 중심의 시대에 시장을 교란한 주범으로 경고조치 등을 받은 금융기관과 담당 임원들을 비교, 수익성이나 건전성과는 다른 도덕성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필요하다.

경고를 받지 않은 기관이나 임원에 대해선 칭찬과 포상을, 그렇지 못한 것에는 시장의 비판과 인식이 필요하다. 세상은 합리와 논리로만 풀지 못할 때가 있다. 도덕과 예의가 귀중한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되는 LG카드 사태에 대해 과연 누가 어떤 경고를 받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문책을 당한 누군가가 혹 몇 년 뒤 한국의 금융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게 되진 않을까 문득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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