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벤처 패러다임
마르크스와 벤처 패러다임
  • 홍승희
  • 승인 2003.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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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노동운동을 고무시키기 위해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이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근대 산업화시대의 노사관계를 겨냥해 사용된 이 말이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는 사회적 갈등의 원흉인양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했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와서는 전혀 새로운 상황에서 이 표현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기업환경은 이제 어떤 시장에서도 장기간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하기는 어렵다.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 정확히는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선 현대사회에서 기업환경은 굳이 벤처기업이 아니더라도 빠른 공수전환의 전술을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현대사회의 기업환경 자체가 모든 기업에 벤처 패러다임의 수용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벤처라는 말처럼 묘하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단어도 없다. 벤처라는 말 자체가 이미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IMF체제 이후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기업문화로 대두된 벤처기업은 그 위험성은 사상된 채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양 선풍을 일으켰다.
벤처기업의 발생국인 미국의 경우만 해도 10개의 기업이 생겨나면 그 가운데 1개 정도가 겨우 생존할만큼 벤처란 위험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 대신 생존하는 벤처들은 물론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기도 한다.
미국 벤처기업의 매력은 경영권에 집착하는 국내 기업들과는 달리 창업주가 계속 그 기업의 경영권을 유지하려 버둥대기보다 빠른 결실 후 경영권 이양을 통한 주식차익을 거둬들이는데서 나타난다. 대개의 경우 벤처기업은 대기업 구조로는 시도하기 어려운 아이템을 개발해 그 성과를 고가에 팔아 수익을 챙기는 것이 최상이다. 아이템이 대량생산 단계로 넘어갈 시점에서 소자본 벤처기업이 계속 아이템을 끌어안고 가려다가는 그 무게에 치일 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벤처기업은 금융산업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최근 5년 사이에 많은 벤처기업들이 부도를 내며 사라져갔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태생적으로 위험성을 안고 있는 벤처기업 투자는 투자자 입장에서 고수익, 고위험을 감안하고 덤벼드는게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적극 시행된 벤처기업 육성 정책이 문제가 많다고 지적들을 하고 있다. 물론 세부적 집행 과정에서는 일부 문제도 드러났다. 그러나 벤처기업 투자를 위험성은 외면한 채 과도한 결실을 기대하는 도박꾼의 자세로 임한 투자자 자신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는 점은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도 지적하지 않는다.
금융기관들도 벤처기업 지원에는 그같은 위험을 일정정도 감수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1개 기업 지원의 결실로 성패를 가늠하고 판단하기보다 벤처투자 전반의 결과를 놓고 성과를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야 담당자들도 소신을 갖고 투자, 지원을 할 수 있고 제대로 된 실적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뭐니뭐니 해도 현대사회에서 금융과 산업이 윈윈할 수 있는 영역은 벤처 쪽이 그 어느 영역보다 크다. 미국이 표준화를 통해 컨베이어 벨트를 출현시켰고 그 대량생산의 힘으로 세계경제의 중심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종신고용에 의한 전 직원의 전문화를 이루며 상품 생산의 지속적 개선을 통해 유연성을 높였던 일본이 그같은 미국의 아성에 도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80년대까지의 기업성공 스토리는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 요즘 나스닥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등 벤처신화가 풀이 죽어가는 듯 보이지만 어차피 트렌드 자체가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존 산업의 환경도 기업들로 하여금 벤처기업형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바뀌어가고 있다.
실상 많은 국내 벤처기업들의 실패 원인에는 수익성 결여보다 경영미숙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그같은 경영미숙을 어느정도 지원, 관리해줄 시스템만 갖춰진다면 벤처기업의 위험도는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야하는 투자자나 금융기관 입장에서 벤처기업은 여전히 매력있는 대상이다. 그들의 경영미숙을 어떻게 지원, 관리해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 역할을 금융기관이 감당할 준비를 갖춘다면 지난 5년간 벤처를 둘러싸고 빚어졌던 여러 오해를 불식시키고 침체된 국내 경기에 새로운 불씨를 지피며 금융기관들로서도 새로운 투자처를 확보하는 윈윈게임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하는 패러다임을 읽으면 투자의 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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