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심리적 공황과 금융안전
사회 심리적 공황과 금융안전
  • 홍승희
  • 승인 2003.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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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출납기(ATM)가 바이러스 공격을 받은 사고가 최근 미국에서 일어났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현금출납기가 바이러스에 공격당한 것은 전세계적으로 처음이라고 한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미국의 두 개 은행 현금출납기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현금출납기가 분산 설치돼 있는 한국 상황 역시 안심하고 있을 일은 아닌 듯하다. 이제까지 현금출납기 사고라는 것은 거의 금전적 이득을 챙기기 위한 물리적 침입에 의한 사고였다.

그러나 이번 바이러스 공격은 이제까지의 현금출납기 강탈이나 금융기관 해킹 사례와는 달리 금전절취가 목적은 아니었던 듯하다. 공격당한 현금출납기가 모두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프로그램을 내장한 기기들이었다는 것으로 봐서는 근래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反MS 진영의 공격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은행들로서는 소프트웨어 점검만으로도 그런 상황에 대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단 큰 걱정은 안해도 될 듯 싶어 다행스럽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근래 서민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국내에서는 종전에는 상상하기 힘들던 여러 유형의 범죄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 만큼 모방범죄의 가능성에 유의하며 적절한 대응태세를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민들의 경제사정이 악화되면 직접적인 금전취득을 목적으로 한 범죄가 증가하는 것은 어느 사회나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특히 근래 들어 한국사회도 그 어느 때보다 금융기관 점포에 대한 직접적 침탈 공격이 늘었다. 범죄가 그만큼 대담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그 양태가 조직적인 금융점포 상대 범죄로 발전하지는 않은 단계라는 점이다.

금융점포 상대 강도라도 아직 헐리우드 영화가 보여주는 식의 갱단이 출현한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는 사회적 불안이 커지거나 미래를 설계하기 어려운 계층이 증가할 경우, 즉 사회 전반에 대해 분노하는 계층이 발생할 경우에는 단지 분노를 발산하기 위한 무차별적 범죄가 나타날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이다. 특히 현재 한국사회는 청년실업률의 증가가 심각한 고민거리로 등장한 상황이다.

인내심이 상대적으로 적고 또 설계해야 할 개인의 미래가 더 긴 젊은 층이 스스로 기대할만한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게 될 경우의 상황은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 이 경우 사회적 불만이 건강한 저항으로 표출된다면 그것이 설사 그 저항의 방식이 과격하다 해도 그나마 사회가 함께 고민하며 풀어갈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사회를 향한 그 불만과 분노를 개인적으로 풀고자 할 경우 쉽게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게 될 우려가 크다. 특히 지금 젊은 세대는 너나없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익숙하게 사용한다. 그만큼 심리적 공황상태가 될 때 이를 이용한 범죄에의 유혹에 빠져들기도 쉽다. 이런 특성이야말로 청년실업문제에 대해 사회가 무엇보다 최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당위이기도 하다.

또한 금융기관은 어느 면에서 보면 그 어느 곳보다 더 큰 유혹의 대상이기도 하다. 당장 돈을 중점 취급하는 금융기관이 우선 금전취득의 욕구가 자제력을 넘어설 경우 1차적 유혹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느 면에서 매우 자연스럽다. 그런데다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개인신용불량자 문제는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진 이들로 하여금 금융기관을 공적(公敵)으로 바라보게 만들 개연성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이제까지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금융기관도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는 좀 더 예민한 주의를 기울이고 사회공동체의 안위에 연대의식을 가질 필요가 크다. 적어도 젊은 층의 심리적 공황상태가 초래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관심을 공유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한명의 도적을 열명이 못 막는다는 옛말이 있다. 경비를 강화하고 물리적 방어태세를 단단히 하며 해킹 예방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사회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진 개인이 다수화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그런 방어는 삽시간에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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