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의생' 인기 업은 스핀오프 드라마···폐기·해외공개·대기 등 고민해야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의대정원 확대로 인한 의사와 정부의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뜻밖의 피해자도 생기고 있다. 물론 가장 큰 피해자는 위급한 상황에서 응급실을 찾지 못해 유명을 달리한 안타까운 목숨들일 것이다.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응급실이 마비돼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직접 당사자를 제외한다면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꽤 심각한 수준의 피해자다.
tvN 인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스핀오프격인 이 드라마는 고윤정, 신시아, 한예지, 강유석, 정준원 등 라이징 스타와 신예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제작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낳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했고 신예 이민수 PD와 '응답하라1988',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보조작가로 참여한 김송희 작가가 메인 작가를 맡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인기를 업고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지만, 이 드라마는 올해 시청자들과 만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후속으로 편성될 예정이었으나 의정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올해 방송이 사실상 무산됐다. 이 때문에 tvN뿐 아니라 이 드라마를 스트리밍 하려던 티빙, 넷플릭스도 곤란한 상황이 됐다. 제작진 측은 "편성 시기 조율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의정갈등이 마무리 되더라도 당분간은 방송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드라마의 공개가 미뤄지면서 이 드라마의 운명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쏟아지고 있다. 당장 방송과 OTT를 통한 공개가 어려운 만큼 최소한의 수익 보전을 위해 다른 경로를 찾아야 할 수도 있다. 비슷한 사례의 드라마들을 살펴보면 이 드라마의 운명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업계에 전해지는 가장 큰 가능성은 '전체 폐기' 수순이다. 2021년 방송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조선왕조를 배경으로 한 16부작 오컬트 드라마였다. 그러나 시작부터 고증오류와 역사왜곡 논란이 불거지면서 2회만에 편성이 취소됐다. '조선구마사'는 이미 방송 당시 80% 가량 촬영을 마친 상태로, 당초 해외 판권 계약까지 진행한 드라마였으나 제작사 측은 판권계약까지 취소하며 손해를 감수했다.
다만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드라마가 스스로 논란을 자초한 것은 아니이기에 시간은 남아있다. 그러나 내년에도 방송이 되지 못한다면 드라마 특성상 폐기가 불가피하다. 이 경우 제작사인 에그이즈커밍은 손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해 5월 전 회차 촬영을 마친데다 의학 드라마 특성상 대규모 병원 세트가 필요해 많은 제작비가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경우 드라마 속 주요 무대인 율제병원 세트를 통째로 지어 촬영을 진행했다.
또 다른 가능성은 해외에서만 공개하는 것이다. 2021년 2월 KBS2TV 드라마로 편성됐던 '디어엠'은 당시 주연배우 박혜수의 학교폭력 논란이 불거지면서 편성이 취소됐다. 이후 재촬영 등 여러 가능성을 물색했으나 결국 다음해인 2022년 6월 일본 OTT 서비스인 유넥스트(U-NEXT)와 미국 내 아시아 방송 전문 OTT 라쿠텐 비키를 통해서만 공개됐다. 한국에서는 정식 경로로 이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의 경우 국내 인기 드라마의 스핀오프인 만큼 해외에서만 공개하는 게 다소 아까울 수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에서도 공개되면서 많은 해외팬들을 확보한 만큼 해외에서만 선보일 경우에도 제작비 보전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가능성은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티빙의 경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공개한 '러닝메이트'가 1년 가까이 공개되지 않고 있고 그보다 이전인 2022년에 촬영을 마친 '샤크: 더 스톰'도 2년 넘게 공개일정이 정해지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티빙의 여러 오리지널 드라마의 공개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뒤로 밀린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는 티빙이 프로야구 모바일 중계권을 획득하고 '우씨왕후'와 '피라미드 게임' 등 화제작들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드라마 공개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적정 시기에 작품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티빙이 내놓은 오리지널 드라마는 7편으로 전년 대비 2편 늘었다. 프로야구 중계까지 고려하면 올해 추가로 드라마를 편성할 경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닝메이트'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LTNS', '운수 오진 날'과 함께 공개했다. '러닝메이트' 외에 나머지 두 작품은 영화제 직후인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에 모두 공개됐다. 티빙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비밀의 숲'의 스핀오프 드라마인 '좋거나 나쁜 동재'와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을 공개한다.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의 해외 공개 플랫폼인 넷플릭스 역시 시청자들의 반응에 민감한 만큼 드라마의 공개 대기를 감내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2022년 11월 드라마 '더 패뷸러스'를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이태원 압사사고 직후인데다 드라마 중 할로윈 파티 장면이 포함돼 한달 넘게 공개를 연기했다. 또 2019년에는 고성-속초 산불 영향으로 '페르소나' 공개를 일주일 가량 연기했다. '페르소나' 중 세 번째 에피소드 말미에 산불장면이 포함된 것에 따른 논란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당초 '눈물의 여왕' 종영 이후 5월 중 방영 예정이었던 만큼 그렇게 오래 미뤄진 편은 아니다. 다만 올해 안에 공개가 불투명한 만큼 제작사 에그이즈커밍과 tvN, 티빙, 넷플릭스, 출연진과 스태프 등 모두의 생각이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이후까지 바라봐야 한다면 드라마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