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경쟁 당국 까다로운 조건 이행하며 마무리 단계, 남은 건 10월 예정된 美 당국 승인
자동차, 항공, 조선, 방산 등 국가 기간산업을 이끌고 있는 재계 리더들이 지속 성장을 위해 변화와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서울파이낸스는 창간 22주년을 맞아 이들 리더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 중인 미래 전략에 대해 5회에 걸쳐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기업결합을 통해 세계 항공사에 길이 남을 독보적인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자 합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2021년 1월 사내 인트라넷에서 진행한 신년사에서 "양사의 통합은 단순히 하나로 합쳐진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나라 하늘을 책임지고 있는 양사 임직원들에게 주어진 운명, 시대적 사명이라고 믿는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대한항공은 신년사 있기 두 달 전인 2020년 11월 이사회를 열고,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로 결의했다. 이 자리에서 조 회장은 "창업이념인 '수송보국(輸送報國)'을 바탕으로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체력을 확보하고, 업계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보전해 국내 항공산업 발전에 기여하고자 이러한 결단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인수 결의의 배경이 된 수송보국은 '수송으로 조국에 보답한다'는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경영철학으로, 수송은 인체의 혈관처럼 경제·문화 등 전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간산업인 만큼 조국 현대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처럼 국익과 공익 차원에서 더 나은 항공산업을 실현하겠다는 조 회장의 결의는 이후 수많은 난관과 마주해야 했다. 기업결합심사 과정에서 유럽연합(EU)을 비롯한 해외 13국 경쟁 당국들은 까다로운 조건들을 내걸었고, 관련해서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 지연 문제와 노조 반발 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조 회장은 시정조치안을 마련하며 각국 경쟁 당국의 조건을 이행했으며, 가장 큰 난관이었던 EU 경쟁 당국의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도 가까스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면서 마무리 지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됐는지 조 회장은 내부 회의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의의 순간부터 매순간이 매서운 겨울이었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제 조 회장에게 남은 건 미국 경쟁 당국의 승인이다. 아시아나항공을 품에 안기 위한 사실상 마지막 관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조 회장은 지난 5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올 10월까지는 미국 경쟁 당국의 최종 승인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기업결합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소비자에게 더 많은 편익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합이 끝나게 되면 대한항공은 세계 10위권 규모의 메가 캐리어로 거듭나게 된다. 국내 항공업계에서 30여년간 이어진 양대 대형항공사(FSC) 경쟁 체제도 막을 내린다. 대한항공 측은 "그간 우리나라는 복수 체제로 인해 주요 항공사들과의 경쟁에서 상대적 열세를 보였다. 인수 절차가 끝나게 되면 노선 운영 합리화, 원가 절감 등을 통해 경쟁력을 제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기업결합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기단 재편을 통한 전열 재정비에 온 힘을 쏟는 중이다. 항공사의 전략은 기단에 녹아있고, 중요한 변화의 기로마다 새 기단을 꾸리는 것은 전략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올 3월 유럽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와 18조원 규모의 중장거리 항공기 A350 33대 도입 계약에 이어, 올 7월 미국 항공기 제작사 보잉과 30조원 규모의 중장거리 항공기 B777-9 20대, B787-10 30대 도입 계약을 체결하며 반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무려 50조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항공기 도입 계약을 맺었다.
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 절차가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조 회장이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새 기단은 아시아나항공 통합 이후 미주·유럽 등 수익성이 높은 중장거리 노선을 소화하며 대한항공 경쟁력을 끌어올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2024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예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됐지만 두 항공사의 통합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큰 성장 동력"이라며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통합 항공사를 우리의 역량으로 정성껏 가꾸면 대한민국 항공업계 전반에 건강한 산업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