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경제가 상당히 어려운 시절을 맞고 있다. 수출 주도 경제 체질을 갖고 버텨온 한국 경제가 수출 감소를 겪으며 체질 개선이 필요한 단계에 들어섰지만 내수는 더 큰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개 주력 수출품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보니 시장환경에 따라 심한 기복을 겪는 까닭도 있지만 현 정부 들어 수출주도 국가가 경계해야 할 외교적 패착도 적지 않았다. 되도록 적은 만들지 않고 우방은 늘려 나가야 할 처지임에도 큰 시장을 지닌 국가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실착은 외교적 어설픔이었다.
국제 정세가 변해감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변명하기에는 같은 상황에서 다른 국가들이 지혜롭게 실리를 챙기는 것에 비해 얻는 것 없이 손해만 보는 선택이 잦았다. 특히 각자도생의 세계적 기류에서 벗어나 스스로 진영의 행동대장을 자임하는 듯 처신한 것은 그야말로 호구 짓에 다름없었다.
수출이 그 지경이면 내수시장이라도 활성화시켜야 하는 데 수출 부진은 수출기업 중심의 노동소득의 감소로 이어지며 그대로는 내수시장의 위축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힘겹게 버텨오던 자영업자들이 높은 물가상승과 가계 소비 위축 국면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는 숫자가 급등하는 것은 당연하다.
팬데믹 기간을 그나마 버틴 것은 소비절벽을 막기 위한 가계소비지원금 덕분이었다. 그나마 기획재정부가 정권의 방침에 거의 반기를 들다시피 하며 극렬히 반대한 탓에 충분하지 못했지만 엔데믹을 기대하며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이 돼 줬다.
정부 부채 증가가 위험하다며 그토록 국민지원금을 반대하던 기재부가 현 정부 들어 터무니없는 정부 지출에 군말 없이 동조해 불과 2년 남짓에 엄청나게 정부 부채를 늘린 것을 보면 그들이 표변한 이유가 스스로의 논리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어처구니가 없다. 소위 부자감세를 통해 정부 재정을 구멍 내면서도 여전히 부실기업으로 인한 재정지출을 퍽퍽 해대는 현 정권과 합을 맞추면서도 반론 한번 펴지 않고 있다.
현재 한국의 내수 비중은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속한다. 한국의 경제 순위와 견주면 최하위권에 든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최근 한국의 경제 순위가 더 낮아졌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 원인에 수출부진에 이은 내수부진이 있음은 거의 확실하다.
21년 말에 비해 23년 말에는 국내 순자산이 698조4천억 원이 줄었다. 이 가운데는 물론 부동산 가격 하락도 한 요인이지만 그보다는 물가상승으로 실질적인 가치 감소가 더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법인세 먼저 깎아줬는데 기업실적까지 신통찮으니 세수에 예상보다 더 큰 구멍이 생겼을 테지만 이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 한마디 없는 것은 꽤 괘씸한 일이다. 취업률 여하를 떠나서 전반적인 노동소득은 늘지 않는 데 비해 물가가 급등하니 소비는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소비할 돈이 없어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국내 시장 상황에 소비를 촉진하려면 정부가 소비할 돈을 제공해줘야 한다. 이는 복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민 권리로서의 사회소득까지 논의를 확대할 필요도 없다.
내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일종의 유수정책으로 돈을 풀라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자영업자들에게 직접 돈을 주면 더 효과가 빠를 것이라고 여기는 모양이지만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데 지원금 믿고 가계를 이어갈 자영업자들이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
근대 조선이 멸망하기 전 100년 남짓 동안에는 그 이전 어느 시대보다도 권력과 부가 극소수에게 집중됐다. 초기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 텄다고도 해석되던 정조 시절이 제대로 꽃피지 못하고 세도정치로 흘러가며 오히려 자본주의적 성장의 꼬투리를 짓밟아버렸다.
부와 권력의 집중은 인권문제를 거론하기 전에 우선 국가 자체의 몰락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경제적 선순환 성장이 가로막히고 극소수에게만 쌓여 그야말로 고인물이 돼 썩어간 것이다. 경제적 강대국에서 추락해 수십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는 세계의 몇몇 국가들 또한 그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는 점을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