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경영 통한 신뢰 회복···준신위 영향력 확대
우리나라 벤처 성공신화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던 카카오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 몰락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데이터센터의 화재로 서비스가 먹통이 되고,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낮은 주주환원으로 주주들의 불만을 샀고, 쪼개기 상장과 매각 시도에 노조의 반발을 샀다. 마치 '하인리히의 법칙'처럼, 큰 사고가 오기 전 찾아오는 몇 가지 작은 징후였을까? 그렇다면 총수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는 카카오에 찾아온 재난의 정점일까? 아니면 더 큰 재난의 징후일까? 그 해답은 과거에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카카오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되짚어가며 재난의 징후를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편집자 주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카카오는 최근 몇 년 동안 큰 문제들이 있었다. 2021년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 등 경영진들의 스톡옵션 매도나 이듬해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의 주요 서비스들이 먹통이 된 사건 등이다. 그 밖에 회사 내 갑질·폭행이나 카카오모빌리티 분식회계, 스톡옵션 먹튀에 가담한 카카오뱅크 CTO를 그룹 CTO로 임명한 사건 등 다른 회사였다면 대형 악재였을 일들이 몇 년 새 연이어 벌어졌다.
김범수 창업주의 구속은 표면적으로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의 주가 조작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최근 몇 년 간 일어난 총체적 난국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든다. '창업주의 구속'이라는 충격은 카카오가 그동안 쌓아둔 문제점들을 개선할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기회를 붙잡아 활용해야 할 사람이 정신아 카카오 대표다.
카카오는 지난 25일 김범수 창업주의 구속 이후 정신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김 창업주와 정 대표는 카카오 그룹 내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CA협의체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김 창업주가 자리를 비우게 된 만큼 CA협의체는 정 대표를 중심으로 활동하게 됐다.
카카오는 비상경영체제 이후 월 1회씩 진행하던 그룹협의회를 주1회로 확대했다. 협의회는 대내외 리스크와 경영현안들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 특히 골목상권 침해와 갑질, 서비스 장애 등 논란 이후 경영쇄신에 집중하던 카카오는 정 대표를 중심으로 경영 쇄신과 상생 프로젝트를 차질없이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카카오가 비상경영체제에 들어서면서 현재 카카오 앞에 놓인 핵심 과제들도 다시 한 번 거론되고 있다. 카카오는 정 대표 체제 이후 계열사 정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카카오의 계열사 수는 지난해보다 19개 줄어든 128개다. 비주류 사업 정리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재계에서는 SK에 이어 두 번째로 계열사가 많은 대기업집단이다.
카카오는 앞으로 인공지능(AI)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비주류 계열사 정리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2021년 9월 혁신안을 통해 골목상권 철수를 선언했음에도 그 경과가 지지부진한 만큼 여기에도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계열사 정리와 함께 준법경영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것도 관건이다. 카카오는 지난해 11월 준법·윤리경영을 지원하는 '준법과 신뢰위원회'(준신위)를 출범시켰다. 위원회는 '준법 시스템', '신뢰·상생' 2개 소위원회를 구성돼있다.
먼저 준법 시스템 소위는 김소영 위원장과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영주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이사장이 소위원으로 활동하며 신뢰·상생 소위는 김용진 착한경영연구소 소장,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 교수, 이지운 서울신문 전략기획실장으로 구성돼있다.
준신위는 출범 초기 김범수 창업주로부터 사실상 카카오의 쇄신에 대한 전권을 받았다. 김 창업주는 당시 "최근 상황을 겪으며 나부터 부족했던 부분을 반성한다. 더욱 강화한 준법 경영 통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초 준신위의 권고안이 그룹 내에서 외면당하면서 준법경영 의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준신위는 지난 3월 정규돈 카카오뱅크 CTO의 카카오 CTO 내정과 관련해 평판 리스크 해결과 예방 방안을 요구한 바 있다. 정 CTO는 카카오뱅크 CTO 재직 당시 스톡옵션 먹튀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른 인물이다.
준신위의 이 같은 권고에도 불구하고 카카오는 4월 1일 정 CTO를 카카오 CTO로 임명했다. 카카오가 준신위의 권고안에 답한 것은 임명 후 20여일이 지난 4월 24일이었다. 카카오는 당시 평판 리스크 개선방안에 대해 "경영진 선임 테이블을 신설해 후보자 명단 구성부터 인사 검증까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프로세스로 진행하겠다"며 "평판 이슈가 제기 됐던 임원은 카카오 재직기간 동안 카카오뱅크 주식을 최대한 처분하지 않고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준신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카카오 역시 준법 경영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범수 창업주의 주가 조작 가담 의혹뿐 아니라 그동안 거론된 스톡옵션 먹튀나 갑질·폭행 등 논란을 고려하면 카카오는 여느 때보다 준법경영을 통한 신뢰도 회복이 필요한 상황이다.
카카오는 준신위와 적극 소통하는 것은 물론 조석영 CA협의체 그룹준법경영실장을 신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