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선별수주 탓에···건설사-조합 '갑을 관계' 역전
깐깐한 선별수주 탓에···건설사-조합 '갑을 관계' 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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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공사비 인상 적극 요구···설계·물가 변동에 최초 공사비比 50~60% 증액
조합이 거절하면 공사 중단·소송 등 진행···사업 지연 원치 않아 결국 조합 수용
공사해 줄 건설사 없어 '수의계약'···좋은 주거 상품 사라지고 회사는 영업비 절감
청담삼익아파트 재건축(청담르엘) 사업장에 공사중지 예고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청담삼익아파트 재건축(청담르엘) 사업장에 공사중지 예고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최근 건설사들이 '옥석 가리기', 선별 수주에 나서면서 정비사업에서 건설사와 조합 간 '갑을관계'가 역전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이 간절하지만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시공사를 찾지 못하는 정비사업장이 늘면서, 건설사들은 출혈경쟁을 줄이고, 공사비 인상에 대해서도 적극 요구하는 모습이다.

1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주요 재개발·재건축 조합들이 건설사의 공사비 두 자릿수 비율 인상 요구를 줄줄이 수용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조합은 공사비 인상 요구에 대해 부정적 반응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해 건설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앞서 대우건설은 지난 3월 서울 성동구 행당7구역 재개발 조합에게 설계 변경 비용과 물가 변동을 사유로 2203억원이던 공사비를 2714억원으로 23%가량 올리고, 공사기간도 5개월 연장을 요구한 바 있다. 이를 조합 측이 수용하지 않으면서 대우건설은 '공사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고, 결국 조합은 최근 282억원(13.9%) 증액을 수용키로 했다.

동대문구 이문3구역 재개발 조합도 시공사 GS건설의 공사비 200억원 인상 요구를 최근 수용하기로 했다. 최초 도급액 대비 23% 증액이다. 이 외에도 GS건설은 성북구 장위4구역(장위자이레디언트)재개발 조합에게도 지난 3월 공사비 약 722억원 증액을 요청했다. 2015년 8월 1256억원 증액부터 총 네 번째 증액 요청으로, 이번 증액도 수용되면 최초 도급액 대비 60% 이상 상승하는 셈이다.

현대건설도 최근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 사업 관련 기존 공사비 2조6363억원에서 4조776억원으로 55% 증액을 요청했다. 아직까지 조합 측과 공사비 세부내역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달 반포 지역 공인중개소 중심으로 해당 단지 공사 중단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 측은 "공사 중단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청담삼익아파트 재건축(청담르엘) 사업장도 공사비 관련 갈등으로 공사 중단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5월 시공사 롯데건설과 공사비를 기존 3726억원에서 5909억원으로 58% 인상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조합 새 집행부 내에서 공사비를 재검증하자는 말이 나와서다. 이에 분양일정이 미뤄져 롯데건설 측은 투입한 공사비를 회수하지 못한 상황이 왔고 오는 9월부터 공사 중단을 예고했다.

과거에도 건설사가 공사비 증액을 요청하는 상황은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에 더해 공사비 증액 협의가 되지 않을 시 공사 중단 카드를 꺼내거나, 조합 측의 대지 지분에 가압류를 걸고 소송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해졌다.

한 조합 관계자는 "시공사가 소송이나 '공사 중단'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조합들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일단 이주, 철거 등이 시작되면 공사가 지연될수록 금융비용이 발생하고, 공사비 갈등 상황을 장기화해서 조합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일절 없는 만큼 울며 겨자 먹기로 공사비 증액에 합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최근 건설사들이 높은 원가율을 이유로 사업성이 있는 곳만 선별수주에 나서며 주택 정비사업 외면 현상이 심화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조합의 요구 조건이 까다롭더라도 일단 수주해 사업을 진행하면 돈이 됐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사업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정비사업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대단지가 아닌 경우 공사를 해 줄 건설사를 찾기가 어려워졌고, 수요가 높은 강남권의 재건축 사업지에서도 시공사 선정 입찰이 2회 이상 유찰되며 '수의계약'이 빈번해진 모습이다.

올해 상반기 중 마감된 정비사업장 시공사 선정 공고 총 23건 중 3건만이 두 개 이상 건설사가 참여해 경쟁 입찰이 성사됐고, 20건은 1개의 건설사가 참여해 경쟁 없이 수의계약됐다. 경쟁 입찰에선 건설사들이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공사비 감액부터 디자인 특화 설계, 커뮤니티 시설 등 경쟁사보다 더 우수한 주택 상품을 조합 측에 제안하지만, 수의계약에선 건설사가 '갑'이 되기 때문에 공사비 증액 등 건설사 측에 유리한 조건의 계약이 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자 최근 일부 정비사업 조합 측에서 먼저 높은 공사비를 제시하며 시공사를 구하러 나서기도 했다. 재건축·재개발 현장을 통틀어 시공사가 아닌 조합이 3.3㎡당 1000만원 이상 공사비를 먼저 제시한 사례가 나온 것이다. 영등포구 여의도 공작아파트 재건축과 용산구 남영2구역 재개발 조합이다. 시공사 재입찰에 나선 마포구 마포로1-10지구 재개발 조합에서는 3.3㎡당 공사비를 930만원에서 1050만원으로 올려 시공사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고준석 연세대학교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것이 사실이라 발주자가 돈을 더 내고 공사를 할 거냐, 공사를 포기할 거냐를 선택하는 문제"라며 "바뀐 상황을 고려해 현실적으로 공사비를 증액하고 높은 시공품질을 기대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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