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 SK하이닉스-'추격자' 삼성전자, HBM 시장 '뒤바뀐 입지'
'초격차' SK하이닉스-'추격자' 삼성전자, HBM 시장 '뒤바뀐 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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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HBM3E 기술 리더십 바탕 시설 투자 확대
삼성전자, 고객사 확보 위한 TF 구성···HBM4 개발 강화
업황 회복기 수익성 극대화···'큰손' 엔비디아 선택 관건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왼쪽),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진=SK하이닉스, 연합뉴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왼쪽),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진=SK하이닉스, 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세계 반도체 시장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재편된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위치가 엇갈렸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주도권을 바탕으로 기술 격차를 벌이는 반면 삼성전자는 추격자 위치에서 전략을 다시 짠다는 계획이다. 과거 삼성전자의 핵심 키워드였던 '초격차'를 SK하이닉스가 선보이게 됐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기 위해 조직개편과 시설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HBM은 여러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만든 고성능 메모리로 데이터 처리 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제품을 말한다. AI 상용화 시대에 데이터 처리 속도와 처리량이 확대되는 만큼 AI 반도체에 핵심으로 손꼽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엔비디아에 HBM3E 12단 제품을 납품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 인력 100명을 투입했다. 이와 함께 차세대 HBM인 HBM4 개발 인력도 300명을 편성했다. TF팀은 이번달 엔비디아 품질 인증 테스트 통과를 목표로 수율 향상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2월 36GB 12단 적층 HBM3E를 개발했다. 삼성전자는 고객사에 해당 제품의 샘플을 제공하고 올 상반기 중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TF팀 구성으로 시장에 대응한다면 SK하이닉스는 설비 투자를 확대하면서 시장에 대응한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가동 전 충북 청주에 연면적 6만3000평 규모의 M15X를 짓고 EUV를 포함한 HBM 일괄 생산 공정을 갖출 예정이다.

이와 함께 미국 인디애나주에 5조3000억원을 들여 HBM 칩 패키징 공장을 건설한다. 해당 공장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짓는 첫 공장으로 미국 보조금을 확보하고 현지 생산체계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 역시 이 같은 설비 투자를 바탕으로 올 3분기 안에 12단 적층 HBM3E를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양사는 'AI 반도체 큰손'인 엔비디아를 겨냥해 HBM3E 양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올해 HBM 발주 물량이 약 10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의 물량을 따내는 기업이 HBM의 주도권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하고 GPU에 탑재되는 HBM3을 단독 납품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엔비디아 AI 반도체 2.5D 패키징 물량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와 만나 AI 분야 협력관계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역시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젠슨 황 CEO와 만나 미래 사업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처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엔비디아와 긴밀한 접촉을 하는 만큼 두 회사 중 어느 곳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사진=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사진=연합뉴스)

◇ SK하이닉스 "내년 물량 완판"···삼성전자 "2라운드 우리가 이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같은 고객사를 두고 같은 제품으로 수주 경쟁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반도체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SK하이닉스가 쫓아가는 처지였으나 이 같은 상황이 바뀐 것이다. 

최근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었던 2017년 당시 삼성전자는 모바일 제품의 고용량화와 서버용 SSD 수요가 늘어나면서 호실적을 기록했다. 2017년 반도체 연간 영업이익은 35조2000억원이었으며 이는 당시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 53조6500억원의 절반이 넘는 규모였다. 

SK하이닉스는 같은 해 매출 30조1094억원, 영업이익 13조7213억원을 기록하며 높은 영업이익률을 유지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서버용 SSD 수요 증가와 모바일 제품 가격 상승 영향으로 호실적을 기록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기술 리더십 확보와 공급물량 확대로 시장 수요에 대응했다. 특히 고성능 서버용 SSD 시장에 주력해 기술 리더십을 기술 초격차를 유지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신규 공정을 확대해 시장 수요에 대응하는데 집중했다. 

이 같은 양사의 전략은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주도권을 잡은 이후 뒤집어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HBM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3%, 삼성전자가 35%로 나타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했으나 이미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만큼 슈퍼사이클이 다시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 최 회장은 "반도체 롤러코스터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며 "앞으로 자본적지출을 얼마나 더 투자하고 얼마나 더 잘 갈 거냐 하는 것은 아직도 업계에 남아 있는 숙제 중 하나"라고 밝혔다. 

이전 슈퍼 사이클과 달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 누구도 시장 지배적인 위치에 있지 않은 만큼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양사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기술 격차를 바탕으로 이 같은 시장 지배력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곽노정 대표는 "HBM 기술 경쟁력을 갑자기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까지 HBM 물량이 완판됐다"며 "12단 적층 HBM3E는 3분기 중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사업부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HBM4 시장에서는 주도권을 되찾는다는 계획이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AI 초기 시장에서는 우리가 승리하지 못했다. 2라운드는 우리가 승리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역량을 잘 집결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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