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명품고객시대 유감
금융의 명품고객시대 유감
  • 홍승희
  • 승인 2003.11.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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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근로자 가계의 월평균 소득이 처음으로 300만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 뉴스를 접하는 이들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젊은 층들의 반응을 듣자면 “어차피 그 3백만원은 소수 고소득층의 평균일 뿐”이라는 정도로 시니컬하다.

전반적 평균이라고 하기에는 빈부격차가 너무 크다는 시각인 것이다. 이 평가가 전적으로 그르다고만 말하기도 어려울만큼 현재 국내에 중간층은 줄어들었다.

물론 중간층의 몰락이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 부시 치하의 미국에서도 요즘 ‘종의 붕괴’라는 표현이 들린다. 종 모양의 정규분포곡선 중앙이 오목한 형태로 변해간다는 얘기다. 이런 계층별 소득구조의 변화는 여러 사회적 변화를 동반하고 있다.

특히 소비구조에서 그 변화는 뚜렷하다. 어떤 상품도 평균소득자를 겨냥해서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다. ‘최고급’의 시대를 넘어 요즘은 ‘명품’의 시대로 진입했다. 졸부에게도 붙여 어색하지 않던 최고급이란 표현과 달리 이 명품이라는 용어 속에는 이미 고착화된 계급의 냄새가 물씬 난다. 그만큼 현재 한국사회의 계층간 장벽이 공고해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의 이유를 개성이 중시되는 문화적 현상에서 찾는 이들도 있지만 단순히 문화적 현상으로만 보기에는 소비 규모의 간격이 너무 크다. 애완견 한 마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빈곤층 몇가구의 생계비에 이르는 현실을 문화적 현상으로만 읽는 것은 그다지 논리적 타당성이 없다.

계층별 소득구조의 변화가 소비패턴의 양극화로 나타나고 나면 그 다음 단계는 정치적 성향의 양극화로 나타난다. 60, 70년대의 계층 분화를 거치며 공고화되기 시작한 계층간 장벽은 이미 80년대에 한차례 거대한 계급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그 열기는 정치적 민주화 운동으로 옮겨붙으며 일단락된 듯했다.

특히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은 팽배했던 계급논쟁의 바람을 순식간에 빼버린 듯했다. 그러나 IMF 국난을 겪으며 더욱 틈이 벌어진 계층간 간격은 이제 소득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며 한국 사회에 새로운 불씨를 던지고 있다. 물론 80년대와 그 성질을 달리한다고는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그릇 안이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변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오피니언 리더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직도 한국사회 최강의 아젠다는 ‘정치’ 쪽에서 생성되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정치권력’이 문제이지만 이미 많은 젊은 층이 정치적 아젠다에 흥미를 잃고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청년실업문제, 점점 더 낮아지는 청`장년 조기퇴직 연령, 여전히 부실하기만 한 사회안전망 등은 혈기왕성한 청년층을 극심하게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적 압박으로 인해 그들이 날카로워지는 것을 막을 방안은 여전히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면에서 현재 이곳저곳에서 분출되고 있는 사회적 저항들은 그 내건 이슈가 무엇이든 그 속내에 미래를 불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들 젊은 층과 빈곤층, 몰락한 중간층들의 몸부림이 담겨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희망을 제시할 사회적 리더십의 실종이 무엇보다 문제. 그렇다고 이미 예전에 겪어본 공허한 구호들이 다시 통할 리도 없다. 풍요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풍요의 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을 지 모르나 이미 풍요와 몰락을 모두 경험한 세대에게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되는 구호는 허황된 사술로 보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개인이 구체적 전망을 세울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가 세운 전망에 무조건 따라 나서기에는 역사적 경험이 너무 상처투성이였다. 취업의 전망이 우선돼야 하지만 그 못지 않게 미래를 설계할 재산형성 방안도 따라줘야 한다.

그 재산형성의 길에 금융이 제1의 동반자가 돼 줘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 한국의 금융현실은 그들 다수를 외면하고 지나치게 소수만을 바라보고 있다. 일종의 명품고객 우대정책인 셈이다. 그러나 당장은 그 소수가 더 큰 수익성을 안겨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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