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스태그플레이션인가?
[홍승희 칼럼] 스태그플레이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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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물가상승률 목표치는 2% 미만. 2%의 벽을 깨야 하지만 아직은 3%를 상회한다. 지난해 7월 6.3%로 최고치를 기록한 시기에 비하면 올 4월 3.7%, 5월 3.32%로 상당히 양호해진 모양새지만 그간 유가가 대폭 내림으로써 2.5%p 인하효과를 더한 것일 뿐 근원물가 상승률에서는 호조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재고비율은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시절의 최고점인 129.2를 상회해 올 4월 130.4를 기록했고 아직도 이 비율은 증가추세다. 그런 속에서 서비스료는 2%대에서 고착화하고 있다. 4월부터 2금융권을 중심으로 연체율은 급등하기 시작했고 소매판매 증가율은 4월 마이너스 2.3%로 코로나 팬데믹 중인 지난 2020년 7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1년 사이에 상장사 가운데서도 한계기업이 급증했고 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 모두 심각하게 감소했다. 현 정부 들어 수출은 341억 달러 감소했으며 무역적자는 683억 달러로 늘었다.

가계 가처분소득은 전 계층에서 감소했다. 특히 감소폭이 소득 하위계층으로 갈수록 매우 커져 위기로 내몰리는 가계가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증가할 위험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경기후퇴와 산업생산의 붕괴가 시작됐다. 기업 매출액이 2021년 12월에 비해 올 4월에는 8.5% 감소했다. 수출부진이 불러온 이 같은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수시장이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하지만 가계 가처분소득의 감소는 내수시장의 침체를 부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료가 정부 목표대로 2%대를 무너뜨릴 경우 안심하는 대신 내수둔화를 우려해야 한다. 유가 등 경제 외적 요인이 물가상승을 부추길 때에 비해 현재는 근원물가 상승률이 전체 상승률을 상회한다는 보고가 있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우려를 자아낸다. 소득은 감소하는 데 물가상승률은 억제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 비하면 물가상승률이 낮다고 희망회로를 돌리는 이들도 있지만 미국은 현재 실업률이 매우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소비 또한 아직은 무난하다. 물론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더 올릴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정부가 선거 이전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미국 내에서는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금리인상 억제 요구가 크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짧은 불경기를 감내하더라도 물가를 우선 안정시키는 게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타협의 방법으로 다시 중국과의 일정 수준 관계 회복을 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요즘 사우디아라비아로, 중국으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행보가 바빠진 것도 미국의 독불장군식 대외정책으로는 물가안정이 힘들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과거 트럼프 정부에서는 중국에 대해 단순히 무역분쟁을 벌이는 수준이었다면 지금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날리는 펀치는 기술패권에 닥쳐올 미래의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고 견제하기 위한 위압적 행위인 것이다.

각설하고 지금 한국은 무역적자 확대로 국내 생산기업들이 한계기업으로 내몰려가기 시작했고 재고는 쌓여가지만 가계 가처분소득마저 줄어들며 내수시장 역시 위축돼 기업활동을 더 압박하고 있다. 곧 대량 실업사태까지 번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암담한 상황으로 떠밀려가고 있다.

정부 관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학자들이나 언론조차 스태그플레이션을 입에 담기 부담스러워 하지만 현재 드러나는 상황은 불행하게도 한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상태로 진입했음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차라리 인플레이션 상태가 행복했다는 비명이 머잖아 터져 나올 단계다.

과거 초보적인 경제학 공부를 할 때 강의하던 분이 인플레이션 3%는 성장 중인 국가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여전히 한국은 고도성장기에 있었기에 그런 소리를 자신 있게 했지만 실은 그 때부터 저성장기에 대비를 시작했어야 했다.

성장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할 때에라도 저성장을 정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였다면 이후에 겪을 법한 여러 고통들을 완화시킬 수 있었겠지만 아직도 고속성장의 미망에 빠진 세대들의 발언권이 너무 강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경제 흐름이 바뀌면 사회 제반의 현상들도 변하기 마련인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의 우스개 표현처럼 '라떼는'을 읊어대는 소위 꼰대들의 목청이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특히 오피니언 리더들이 심하다. 그게 미래세대에게 족쇄가 됨을 부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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