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감소·고금리에···은행도 빚부터 갚는다
가계대출 감소·고금리에···은행도 빚부터 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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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 86兆 상환···예년 대비 상환액 대폭 확대
고금리에 채권발행 환경 악화···'예금유치' 유리
하반기 만기물량만 101兆···'순발행' 기조 돌아설까
(왼쪽부터)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 (사진=각사)
(왼쪽부터)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 (사진=각사)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지난해부터 가계대출이 감소하면서 자금 조달의 여유가 생긴 은행들이 대규모 은행채 상환에 나서고 있다.

23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 22일까지 은행채 상환액이 86조52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순발행액은 마이너스(-) 21조2300억원을 기록했다. 순발행액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것은 채권 발행 규모가 상환 규모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의미다.

올해 은행채 상환액 규모는 예년과 비교해 월등히 많은 수준이다. 지난해 1월부터 그해 5월 22일까지 은행채 상환액은 65조3040억원, 2021년 1월부터 그해 5월 22일까지의 상환액은 61조1001억원이었다. 2021년 및 2022년의 상황과 비교하면 올해 은행채 상환 규모는 약 20조~25조원 가량 많다.

같은 기간 순발행액도 2021년 1조4799억원, 지난해엔 -5조1410억원이었다. 비교해 올해 순발행액이 -20조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은행들이 채권 발행보다 상환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은행들이 은행채 상환에 적극 나선 배경으로는 가계대출 수요 감소와 높은 시장금리에 따른 조달부담 등이 꼽힌다.

먼저 고금리 기조 장기화, 부동산시장 침체 등으로 가계대출 수요가 크게 줄면서 은행들이 채권 발행을 통해 여유 자금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줄었다.

실제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1분기 가계신용'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853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4분기 1867조6000억원에서 13조7000억원(0.7%) 감소했다. 2개 분기 연속 감소세로, 2002년 가계신용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크게 줄었다. 가계신용은 전년 동기 대비로도 9조원(0.5%) 감소했다. 은행만 놓고 보면 전분기보다 가계대출이 12조1000억원 줄었다. 전분기 감소폭 4000억원에서 대폭 확대됐는데, 올해 들어 은행 가계대출 감소세가 가팔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만 보더라도 가계대출은 지난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16개월째 감소하고 있다. 지난달 말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77조4691억원으로, 가계대출이 감소세로 돌아서기 직전인 2021년 12월 말 잔액(709조529억원)과 비교하면 1년4개월 만에 31조5838억원 줄었다.

시장금리 상승으로 채권발행 환경이 전년 대비 악화된 것도 은행채 상환 속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지난 22일 기준 은행채(무보증·AAA) 6개월물과 1년물 금리는 각각 3.766%, 3.773%로 1년 전인 지난해 5월 20일 금리(1.999%, 2.523%)와 비교하면 각각 177bp, 125bp 높다. 최근 글로벌 긴축 종료 기대감에 시장금리가 하락세로 돌아섰다고 하더라도 과거 저금리 때와 비교하면 여전히 채권발행 환경은 좋지 않다.

최근 은행 예금금리가 연 2~3%대에 형성돼 있는데, 은행 입장에선 더 높은 금리를 주고 은행채를 발행하는 것보다 예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게 유리해진 것이다.

다만, 올해 2분기부터 은행채 만기 물량이 대폭 늘어나는 만큼 은행채가 발행 기조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대규모 채권 물량을 일시에 모두 상환하기엔 은행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올해 2분기(4~6월) 은행채 만기도래 물량은 총 62조6200억원으로, 이는 1분기(48조3600억원)보다 약 30% 증가한 규모다. 올해 하반기(7~12월) 은행채 만기도래 물량은 101조4700억원이다.

우량채로 분류되는 은행채가 대거 발행되면 채권시장 내 자금을 빨아들이게 되는데, 신용등급이 더 낮은 일반 회사채의 자금조달 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채권 발행 및 상환 규모나 시기는 시장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은행도 자금조달 방식을 다변화하면서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며 "대규모 상환 기조가 계속되진 않을텐데, 올해 만기 물량이 많아서 시장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채는 현재 순상환(발행액보다 상환액이 큰 상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은행채 발행이 증가할 경우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한전채 물량에 은행채가 가세하면서 다른 회사채 및 여전채에 대한 구축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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