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때보다 더 힘들다?
IMF때보다 더 힘들다?
  • 홍승희
  • 승인 2003.11.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많은 서민들이 푸념한다. IMF때보다 더 힘들다고. 왜 그럴까. 정말 그 때보다 상황이 나빠진 것인가.
경기동향을 보면 그래도 나아지고 있음이 분명한데 통계수치상으로는 얼핏 잘 보이지 않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IMF사태 이후 한국은행 통계자료를 보면 지난 2001년부터 개인저축률이 ‘0’으로 기록되고 있다. 98년 21.9%를 피크로 계속 연속 2년 내리막길을 걷던 저축률이 불과 3년만에 0%를 기록한 것이다.

당연한 일이겠으나 이런 추세는 금리와 거의 같은 곡선을 그리며 움직인다. 저축률이 정점에 달했던 98년은 저축성 수신금리 역시 최근 몇 년새 최고 수준인 13.30%다. 4% 대로 떨어진 수신금리에 개인저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는 그런 저축부진과 현재의 더 힘들어졌다는 푸념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서민가계가 IMF 직격탄을 맞은 직후인 98년은 근래에 보기 드문 기록들을 보인다. 개인순저축률은 그 전 몇 년과 비교해서도 가장 높고 가계신용은 가장 낮다. 금리가 높으니 예금은행에 돈이 몰렸다고도 볼 수 있고 심각한 경제적 고통이 예고된 상황에서 각 가계가 일단 자산의 현금화에 치중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농담처럼 얘기하자면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일시적인 퇴직금 증가로 가계의 현금이 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의 소비부진, 가계신용 증가는 그 때 현금화한 자산이 있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버텨내던 가계가 점차 체력적으로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한 징표로 볼 수도 있다. 일단 한 번 실직했던 40대 이상의 재취업은 난망한 상태고 재취업을 해도 소득이 전만 못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실직상태 몇 년간 있던 자산 야금야금 빼먹으며 버텼거나 그도 아니면 신용카드 돌려막기 등으로 빚만 늘었을 것이고 그 상황에서 간신히 재취업한 가계는 저축이 바닥난 상태에서라도 현상유지나마 하지만 여전히 실직상태이거나 불완전 취업상태인 가계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가족끼리 개인파산을 넘어 가계파산으로 나아가기 첩경일 터다.

우리보다 앞서 불황의 늪을 건너고 있는 미국이 지난해 사상 최고치의 개인파산 신청 건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2001년보다도 7.8% 증가해 지난해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162만5천813건에 달했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개인파산 신청 증가는 다른 경제지표들을 뒤따라가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쪽 전문가들도 미국이 경기회복기에 들어섰다 해도 앞으로 몇 년간은 개인파산자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한다.

이제 우리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 진폭은 어쩌면 미국보다 더 클 수 있다. 철저히 개인주의 사회인 미국과 달리 한국은 웬만하면 극악한 상황에 처한 주변 가족, 즉 부모형제들의 곤란을 아예 외면하지는 못한다. 한사람이 파산신청을 한다는 것은 곧 그 주변가족까지 한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계가 전체 국민 가운데 몇%에 이르는지는 어떤 통계로도 잡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웬만한 봉급생활자와 영세 상공인들이 대략 다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 피부로 느껴지는 시중 상황이다. 그 말은 소수의 안정적 전문직이나 자산운용가계를 빼면 거의 모든 국민이 소름끼치는 한파를 느끼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다 더해 심리적 요인도 요즘을 IMF 직후보다 더 힘겹게 만든다. 그 당시에는 그래도 우리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의지같은 긍정적 내재요소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지친 것이다. 지친 상태에서는 웬만하면 전망이 보이질 않는다. 전망이 보이지 않아 더 지치기도 한다.

이처럼 지친 국민들에게 현재 정부가 내놓는 정책은 참으로 안일해 보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부동산대책은 여전히 돈많은 계층의 이해에 끌려다닌다는 인식을 줄 법하고 취업에 목마른 이들에게는 정부의 노동대책도, 취업대책도 도무지 무대책으로만 보이는 듯하다. 근래 한 대학 졸업반 학생이 한 말은 그런 점에서 정부가 귀담아 들을 만 해 보인다.

“제발 정부가 우리에게 희망적인 말 한마디라도, 아니 관심을 갖고 있다는 한마디 위안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