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민영화로 ‘올인’인가
이젠 민영화로 ‘올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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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기자회견) 발표가 나왔다. 취임 넉 달도 채 안된 대통령이 직접 나와 국민 앞에 고개 숙여야 하는 현실이 참 딱한 노릇이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그 진정성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결코 포기를 모르는 사람,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추진력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도 선거전에서는 유리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의 시국에선 오히려 독이 되는 듯하다.

어느 만평에선가는 쇠고기 재협상과 관련, 쥐가 고양이의 약속을 믿어도 되느냐고 비아냥댄다. 미국 정부의 도덕성 자체에 대한 불신과 미국에 대해 주권을 지키려는 의지가 박약한 정부에 대한 불신을 동시에 내포한 만평의 내용에 열광하는 인터넷 여론이 한국사회의 앞으로의 분위기를 넘겨짚어 보게 한다.

대통령이 기자회견 형식을 빌려 발표한 사과 내용이 알맹이가 없다, 미국이고 정부·여당이고 어떻게 믿느냐 등등 비판도 여전하지만 일단 국민의 지지가 없는 한 한반도 대운하 공사는 중단한다고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공식적으로 밝혔다.

여론이 들끓고도 한참 지나서 뒤늦게 재개됐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은 20일 현재 잘 마무리됐다고 하지만 그 결과는 추후 발표된다고 했다. 헌데 협상 결과 발표에 앞서 대통령이 먼저 대국민 사과를 하고 나서는 등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아마도 미국 정부가 30개월 이상 소의 한국 수출을 통제하겠다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어떻든 정부로선 소나기는 피할 수 있으리라 여길 법도 하겠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게 민영화다. 공공기관 개혁에 대한 여론 지지율이 48%에 이른다는 정부 주장인 만큼 이제 여러 걸림돌을 걷어냈으니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나설 여건이 된 셈이다. 물론 전기, 수도 등 소위 ‘민영화 괴담’으로 불린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4개 공기업은 민영화 대신 ‘공기업 선진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는 4개 공기업 외에는 모두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고 민영화 대상에서 벗어난 4개 공기업도 거의 해체 수준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 민영화 대상기관은 최소 20개, 최대 70개가 거론된다. 당장은 민영화계획이 확정, 발표된 산업은행 외에 한전과 같은 거대 공기업들의 자회사들이 우르르 민영화 대상에 들겠고 유사 업무를 하는 기관으로 분류된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통폐합은 기정사실화 돼가고 있다.

그간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는데 대다수 국민들이 쉽사리 동의하리라는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에 대한 책임이 구조조정의 주 대상이 될 중·하급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인지는 해당 노동자들 외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국가적 군살빼기를 위해 일정한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 대상은 언제나 그렇듯 사회적 지위가 약한 부분부터 선착순이다. 일을 주도하고 그르친 장본인들은 여전히 잘 먹고 잘 사는데 힘없는 약자여서 나만 혹은 우리만 당했다는 불만이 커져가는 데 대해 이 사회의 상층부는 매우 둔감하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정부가 사람을 몇 바꾼다고 뭐 달라질 게 있겠느냐며 미덥지 못한 표정인 것이다.

현 정부의 출범을 10년 만의 정권 탈환이라고 기뻐했던 보수 세력도 촛불집회가 이어져가는 상황 앞에서는 정부에 짜증을 냈다. 기껏 정권 만들어줬더니 이렇게 위태롭게 만드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국민들의 진정한 요구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듯하다.
식량이 부족해 생존이 불안한 사람에겐 쌀 한 바가지가 그보다 몇 십 배 비싼 와인 한 병보다 훨씬 더 소중한 법이다. 지금 국민들은 대기업이 더 커져 국부가 커지는 것도 좋지만 서민의 삶이 위협받지 않을, 그런 안정이 더 중요하다. 일자리를 흔들며 성장의 행진곡을 아무리 불러도 서민들은 더 이상 먼 미래의 환상을 쫒아가지 않는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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