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톤 무대, 현대무용 필 ‘시어터-댄스’...연극 제맛
[서울파이낸스 김무종 기자] 안톤 체홉의 세자매를 각색한 ‘세자매 죽음의 파티’(연출 나진환)를 보기 위해 대학로 홍대아트센터를 찾아 두 번의 착오가 있었다.
하나는 앞서 레드 톤의 세자매 홍보 이미지를 인지하고 있어 대극장에서 열리는 뮤지컬 레드 북을 찾은 것이고 또 하나는 2시간 러닝타임으로 알고 갔는데 무려 3시간이었다.
뒤이은 저녁 약속도 그렇지만 연극을 세 시간이나 한다고 땡하고 무언가에 맞는 느낌이었다. 연출은 왜 각색임에도 여지없이 3시간을 고수했을까.
막이 오르고 붉은 톤의 무대가 드러난다. 엄밀하게 사실주의로 얘기하자면 지하 소극장이기에 막은 없다.
가로가 길어야 할 무대가 세로가 더 길다. 그래서 공간감과 입체감을 준다. 배우들이 나타나기 전 의자들이 눈에 띈다. 역시 붉은 색이다. 의자들은 유명 레스토랑의 메뉴 가니시처럼 제 역할을 해낸다.
공간은 다시 가로로 확장되며 원래 연극 무대의 형식을 보여주었다 사라지곤 한다.
제목 죽음의 파티가 암시하듯 유쾌한 내용은 아닐텐데- 안톤 체홉이 그러하듯이- 이를 세시간이나 기획한 연출 의도가 궁금했다. 원작 그대로가 아닌 각색인데, 새로운 형식을 실험적으로 도입해 배우들 에너지 소비도 많을텐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확인해 보겠지만 관객에 대한 도발이다. 당신이 세시간이나 볼 수 있겠어 라는 의중이 깔려있는 듯했다. 그래 넌 지쳐 떨어져 나갈 거야. 너가 연극 맛을 알어? 등 연극을 보며 내내 이런저런 생각이 난다.
비극을 세시간이나 보는 것은 상당한 체력소모다. 배우는 더 하겠지만 관객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처음부터 몰입이 된다. 이건 왜 일까.
단순한 소품들이 배우들 손에 놀아나며 관객의 집중도를 높인다. 배우 몸 자체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대사만 갖고 판단한다”는 대사가 복선을 주듯, 배우의 몸은 대사와 함께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마치 현대 무용을 보는 듯하다.
나진환 연출은 “이 작품은 내 연출 스타일에 시어터-댄스(Theatre-Dance) 형식을 강화한 형태다. 시어터-댄스 형식은 컨템포러리 댄스의 언어를 연극적으로 도입한 형식이다”라고 설명했다.
공연장을 나서며 팜플렛에서 연출 변이 떠오른다. “올해 우리 극단이 아니 대표인 내가 그동안 누적된 제작비의 문제로 장렬히 전사하든, 아니면 의미있는 걸음을 한 걸음 가든 그건 오로지 신만이 알 것이다.”
연극의 제 맛을 느끼려면 한번 볼 만하다. 배우와 함께 극한(?)의 고통을 공유해 보는 건 어떨까. 인생은 절망에서 꽃피는 것이니까.
▶극단 피악 / 연출 나진환(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 무대미술 임일진(인천대 공연예술학과 교수)/배우 김소희 리다해 권혜원 한윤춘 김미숙 양수연 外/ 공연 5월 21일까지 /예매 인터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