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법은 갑질법?···업계 "영업기밀 다 내놓으란 소리"
美 반도체법은 갑질법?···업계 "영업기밀 다 내놓으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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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상무부,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 세부절차 공개
수율·가동률 등 영업기밀까지 상세히 적어내야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라인(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라인(사진=SK하이닉스)

[서울파이낸스 이서영 기자] 미국이 반도체법 관련 보조금을 지급 받으려면 반도체 기업의 영업기밀인 수율·가동률 등까지 신청서에 적어내도록 해 '갑질'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사실상 '경영 개입'까지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며 고개를 가로 젓고 있다. 

28일 미국 상부부는 반도체 과학법에 따른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보조금(인센티브) 신청 절차 세부지침을 발표했다.  

미 상무부는 "반도체법 프로그램 심사에 있어 사업경제성 추산에 필요한 재무모델, 인력 개발 및 환경 평가 조건 정보 등이 잠재적 지원금 규모와 유형 등을 검토하는 데 사용된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일단 제출해야 하는 정보가 많다. 반도체 공장의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 가동률, 예상 웨이퍼 수율, 생산 첫 해 판매 가격, 이후 연도별 생산량과 판매 가격 증감 등 입력해 보조금을 신청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 기업에게 수율의 경우, 민감한 영업 기밀이다. 현재 버전의 반도체 수율을 알게 되면 마진이나 향후 영업 전략 등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같은 자료는 단순히 숫자가 아닌 산출 방식을 검증할 수 있는 엑셀 파일 형태로 제출하도록 했다.

이 뿐만 아니라 비용 측면에서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소재, 소모품, 화학품과 공장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 공공요금, 연구개발(R&D) 비용 등을 써내야 한다. 또 질소·산소·수소·황산 등 소재 별로 비용을 산출하고, 인건비도 엔지니어와 기술자·관리자 등 직원 유형별 고용 인원을 기입해야 한다. 

지난 9일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의 보조금 요건이 한국 기업의 경영 개입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미국은 자국 기업에도 같은 기준을 내세우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제시해야 하는 정보가 너무 많고,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것들이라 당황스럽다"며 "아직 보조금 신청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보조금을 받으면 경영 개입을 하겠다는 의지로 보여서 더욱 고민된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170억달러(약 22조5000억원)를 투입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등으로 삼성전자의 테일러 공장 건설 비용은 당초 170억달러에서 80억달러 늘어난 250억달러 이상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보조금을 신청한다고 가정해 단순 계산하면, 받을 수 있는 직접 보조금은 8억5000만∼25억5000만달러(약 1조1000억∼3조4000억원) 규모다. 대출과 보증까지 포함하면 지원액은 59억5000만 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설비 투자비가 늘어 보조금을 받으면 기업 입장에선 큰 도움이 되지만, 그렇다고 영업기밀까지 내놓으면서 투자하라는 것은 지나치다"며 "현지에 투자도 하고, 고용도 창출하는 데 보조금 명목으로 영업비밀까지 내놓으라는 것은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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