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민영화 20년 넘었는데 아직도"···정부의 인사 개입 도 넘었다
"KT 민영화 20년 넘었는데 아직도"···정부의 인사 개입 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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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압박과 검찰 수사에 윤경림 KT 대표 후보 사의 표명
2002년 민영화됐는데 정권 바뀔 때마다 인사 개입 구태
"국민연금 앞세워 대주주처럼 간섭, 자본주의 근간 흔들어"
윤경림 KT 대표이사 최종후보 (사진=KT)
윤경림 KT 대표이사 최종후보 (사진=KT)

[서울파이낸스 이도경 기자] 윤경림 KT 차기 대표이사 후보가 공식 내정 보름만에 사퇴 의사를 밝히며 KT의 경영 차질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여권의 압박과 검찰 수사에 대한 부담이 원인으로 분석되는 가운데, 정부의 과도한 민간 기업 흔들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기업도 아니고 2002년 민영화된지 21년이나 됐는데도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KT 고위 임원 인사에 개입하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윤 후보는 지난 22일 열린 KT 이사회 조찬 간담회 자리에서 KT 이사들과 만나 "이대로 더 버티면 KT가 더 어려워질 것 같다"며 사의를 전달했다.

이사회는 회사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며 만류했으나 윤 후보는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KT는 이른 시일 내 윤 후보의 사퇴 의사 수용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윤 후보의 이같은 결정은 KT 내부 인사 출신에 대한 여당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압박이 지속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달 초 KT 이사회에서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선출되던 당시만 해도 지배구조 개선 TF(태스크포스) 설치와 거버넌스 개혁 등 자신감을 드러냈으나, 검찰의 수사까지 이어지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KT는 그간 대표이사 후보 선임 과정에서부터 정부와 여당의 압박을 받아왔다. 당시 여당은 기자회견을 통해 "'깜깜이 셀프 경선'으로 연임을 시도한 구 대표가 자신의 아바타인 윤경림 KT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을 세웠다는 소문이 무성하다"며 "KT가 자기들만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사장 돌려막기'를 고집할 경우 검찰과 경찰은 구 대표와 일당들에 대한 수사를 조속히 착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임기 이사회로부터 연임 적격 판정을 받은 구현모 KT 대표는 여당과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주주 이익 제고를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 강화를 이유로 반대에 나서자 대표이사 후보에서 사퇴했다.

윤 후보가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최종 내정된 후 검찰은 곧바로 윤 후보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보수 성향 시민단체 '정의로운 사람들'이 제기한 고발 건을 접수하고, 지난 8일 공정거래조사부에 사건을 배당, 수사에 착수했다.

해당 시민단체는 지난 7일 구 대표와 윤 후보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 2021년 7월 구현모 KT 대표의 친형인 구준모씨가 대표로 있는 차량용 소프트웨어 벤처 '에이플러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당시 현대차에서 근무하던 윤 후보가 높은 가격에 인수하도록 도움을 줬다는 이유다. 또 고발장에는 윤 사장이 KT 계열사인 KT텔레캅의 일감을 사설 관리업체 'KDFS'에 몰아주고 이를 통해 조성한 비자금을 로비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의혹도 담겼다.

KT측은 지난 10일 입장문을 통해 "현대차의 에이플러그 인수 당시 윤 사장은 투자 의사결정과 관련한 부서에 근무하지도, 해당 결정에 관여하지도 않았다"며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서도 KT와 KT텔레캅은 외부 감사와 내부 통제를 적용받아 비자금 조성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정부는 KT 내부 출신 인사에 대한 반대가 소유분산 기업의 사유화를 막고 주주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KT 내부 인사 출신을 끌어내리고 친정권 '낙하산' 인사를 앉히기 위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유분산 기업에서 최고경영자(CEO) 중심의 이권 카르텔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히 막아야 하지만, 민영화된 지 20년이 넘은 기업을 권력으로 찍어누르는 것이 바른 일인지는 의문"이라며 "결국은 지배구조 개선을 이유로 친정부 인사가 대표 자리에 앉게 되는 수순 아닌가"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가 오히려 경영 투명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키우고, 주주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주주총회를 약 일주일 앞두고 윤 대표가 사의를 표명하며 KT의 주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24일 NH투자증권은 CEO 교체 과정에서 부각된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KT 목표 주가를 기존 5만원에서 3만8000원으로 대폭 낮췄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총을 일주일 앞두고 CEO 후보가 사의를 표하면서, 짧게는 3개월에서 6개월 동안은 경영 불확실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며 "상반기 경역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에 지난 3년간 KT가 발굴한 성과가 지속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스튜어드십 코드를 명목으로 한 국민연금의 기업 경영 간섭이 지속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일성을 강조한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라 정권의 눈치만 보고 정권에 사업코드를 맞추는 폐해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이성구 기업소비자전문협회 이사장은 "국민연금이 경영 개입에 나서기 위해서는 주주 투표 시스템 등을 통해 일반 소액 주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다"며 "국민연금이 일반 주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독립적인 대주주처럼 경영권을 행사할 경우, 국민연금과 관리 주체인 정부에 잘보이지 않으면 경영권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굉장히 위험한 것으로 도를 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윤 후보의 사퇴가 공식화할 경우 오는 31일 열리는 정기 주총에서는 대표 선임 안건이 제외된다. KT 정관에 따르면 대표이사 유고 시 직제 규정이 정하는 순서에 따라 사내이사가 직무를 대행한다.

현재 송경민 KT SAT 대표와 서창석 네트워크부문장의 사내이사 선임 의안이 주총에 상정됐지만, 윤 사장의 사의가 수용된다면 이들의 선임 안건도 함께 폐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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