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명분·실리 모두 잃은 금융노조
[기자수첩] 명분·실리 모두 잃은 금융노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초 급하게 은행 두 곳에서 거래내역서를 발급 받아야 할 일이 있었다. 그때 시간이 오후 3시경으로, 단축근무로 일찍 문을 닫는 은행 영업시간에 맞춰야 했기에 남은 시간은 30분 남짓이었다. 거래내역서는 비대면으로 발급 받을 수 없어 꼭 영업점을 방문해야 했다.

문제는 당시 기자가 지방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영업점이 많고, 영업점 간 거리가 멀지 않은 서울·수도권과 달리 해당 지역에서 은행을 방문하려면 차를 타고 20~30분은 가야했다.

30분 안에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 은행 두 곳을 방문한 뒤 거래내역서를 발급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겨우 방문한 은행에서도 단축영업의 영향으로 고객이 몰린 탓에 꽤 오랜 시간 대기를 해야 했다. 코로나19 탓이라지만 당시 문을 일찍 닫는 은행이 괜스레 원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지난 2021년 7월부터 시행된 은행 단축영업이 지난달 30일 종료됐다. 실내마스크 의무조치가 해제되면서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단축영업으로 오전 9시30분~오후 3시30분이었던 은행 영업시간은 이날부터 오전 9시~오후 4시로 되돌아갔다.

은행 단축영업으로 불편을 겪던 고객들은 반가운 눈치다. 그동안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반차(오전이나 오후 동안 주어지는 휴가)를 써야 했던 직장인들, 가게 문을 잠시 닫아야 했던 자영업자들은 "한결 편해졌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동안 은행 단축영업에 따른 불편함을 겪은 게 비단 기자 혼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금융노조는 은행 영업시간 정상화 조치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와의 합의 없이 단축영업 조치를 종료했다는 이유에서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단축영업이 노사 합의 하에 결정된 만큼, 이를 복원하는 조치 역시 노사 합의가 뒷받침돼야 하는 것이다. 노조는 합의 위반에 따른 업무방해 혐의로 은행을 상대로 한 법적대응도 예고한 상태다.

애초 영업시간 단축은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마스크를 쓰고 고객을 대면해야 하는 은행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고자 시행됐다. 그러나 코로나19 엔데믹 전환으로 실내마스크 조치가 해제됐고, 식당 등 기관과 점포들이 대부분 영업시간을 정상화한 상황에서 은행만 단축영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노조의 주장에는 단축영업 탓에 불편함을 겪고 있는 고객 배려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은행의 '공공재 성격'을 고려하면 영업시간 정상화 조치는 사실 늦은 감이 있다. 국민 여론 역시 노조 주장에 등 돌리고 있다는 점을 봐도 노조의 이번 입장은 여러 모로 아쉬울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이자장사, 성과급 잔치, 억대 연봉 등으로 거센 비판에 마주한 대다수 은행원들은 노조의 이번 행동이 은행의 부정적 시각에 기름을 붓는 게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노조가 고객은 물론 사내 구성원인 은행원들까지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팬데믹을 극복하고 대다수 국민들이 일상생활로 복귀했듯이, 은행 영업시간 단축 종료 역시 일상생활로 스며드는 자연스러운 한 과정일 뿐이다. 영업시간 정상화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종료돼야 할 때다.


관련기사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