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관치와 견제 사이
[기자수첩] 관치와 견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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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집권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해 말부터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인사 태풍'이 몰아치더니, 한국을 대표하는 5대 금융지주 가운데 신한금융, NH농협금융에 이어 인사 태풍의 '핵'으로 꼽히던 우리금융의 수장까지 세대교체가 이뤄질 예정이다.

사실 금융지주 수장에게 있어 '인사 태풍', '세대교체' 등은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표현이다. 과거 라응찬 전 신한금융 초대 회장(4연임·2001~2010년)부터 김승유 전 하나금융 초대 회장(3연임·2005~2012년),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4연임·2012~2022년) 등의 사례를 봤을 때 '장기 집권'이란 표현이 되레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일단 회장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만 70세까지는 끄떡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금융지주 회장직의 '3연임'은 이미 업계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1~2개월 전까지만 해도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과 손병환 전 농협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의 연임이 점쳐졌기에, 이번 금융지주 회장의 대거 물갈이 세대교체는 더욱 낯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금융지주 수장들의 잇단 낙마 배경은 무엇일까. 업계 안팎에선 금융 당국의 입김이 닿은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적잖다. 실제 지난해 말 '윤석열 캠프' 출신인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이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관치 금융 논란은 거세게 일었다.

이번 손태승 회장의 용퇴에 당국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손 회장은 용퇴의 배경을 '세대교체'라고 설명했으나, 당국의 압박에 못 이겨 용퇴를 택했다는 게 업계의 시선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국은 그동안 라임펀드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손 회장을 상대로 여러 차례 우회적 압박을 가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우리은행의 라임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손 회장에게 문책경고 제재 결정을 내렸고, 중징계 불복 소송을 검토하는 그에게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상 '연임에 도전하지 말라'는 퇴진 압박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압박은 결국 손 회장의 연임 포기로 이어졌다.

금융권에선 이를 두고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금융지주 수장에 대한 당국의 사퇴 압박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펀드 사태 등과 관련해 책임이 있는 경우 당국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이들도 있다. 분명한 점은 감독기관으로서 금융사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지만, 필요 이상의 언급은 관치와 같은 불필요한 오해를 필연적으로 낳게 된다.

관치는 금융권의 해묵은 논란거리다.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금융지주가 외풍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만큼, 관치를 막으려면 금융권 스스로가 먼저 개혁하고 투명해져야 한다. 관치에 휘말릴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사모펀드 사태에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횡령 사고로 금융권이 한바탕 홍역을 치뤘다. '제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나머지 내부통제에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곱씹어 볼 일이다. 관치는 개혁을 명분으로 낡고 썩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습성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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