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이 무엇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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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붕괴된 한미동맹의 조속한 복원이 시급해 서두르다보니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의 18대 국회 원내대표인 홍준표 의원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과 관련해 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 한 말이다. 홍의원은 그 자리에서 6월의 역사적 경험을 두루 ‘반미’로 규정하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가 반미시위로 이어질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가 꼽은 6월 반미의 역사에는 6.10항쟁, 효순·미선이 추모집회는 물론 6.15남북정상회담이 포함돼 있었다. 한나라당 새 원내대표인 그의 이런 발상이 그 한사람만의 것은 아닐 터이다. 그가 드러낸 집권 여당의 참 놀라운 역사인식을 다시 더듬어보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한 장관 고시가 있던 지난 29일(목) 오후 4시부터 수입반대 시위는 시작됐다.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 전국적으로 수만 명의 인파가 거리로 몰려나와 새벽까지 촛불과 함께 ‘고시철회 협상재개’ 등의 피켓을 들고 외쳤다. 그 시위가 벌어지던 시간 한 방송국에서는 시사토론이 벌어졌고 그 자리에서 홍의원이 그처럼 말했다.
평소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대중적 시선을 끌던 그였지만 역사인식과 관련해서는 참으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보여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주제로 토론하다가 세 불리해지면 정치적 문제로 화제를 돌려버리는 재주도 함께 보여줬다. 국민적 반대를 무시하고 쇠고기 수입 장관고시를 한 마당에 그를 둘러싸고 토론하는 자리에서 야당을 향해 18대 국회에서 야당과 동반자 관계로 논의하고 협력하는 정치를 해 나갈 테니 도와달라는 말을 했다. 국민적 의제를 젖혀두고 무슨 논의를 하고 협력을 한다는 것인지 듣기에 참 묘한 뉘앙스의 말이다. 그야말로 ‘우리끼리’ ‘정치인끼리’를 ‘우리가 남이가’하던 방식으로 함께 하자는 것은 설마 아니리라 믿는다.
홍준표 의원은 지난 10년간 한미동맹이 붕괴됐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은 미국의 외교·군사 우산 아래 안주하던 한국이 비로소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옷을 벗고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그게 동맹의 붕괴라면 그런 동맹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국에서도 먹지 않는 늙은 소, 위험한 식품을 강매하는 미국, 100% 자국산 무기로 채워지기를 요구하는 미국의 억지를 다 들어주는 것만이 한미동맹이라면 그게 우리에게 무슨 득이 있을까.
물론 대한민국은 미국에 신세진 일 있다. 하지만 그 빚은 다 갚았다. 미국이 전쟁을 벌이면 위험한 곳, 건질 것 미국이 다 건지고 남은 것 별로 없는 곳마다 우리의 젊은 장병들이 나감으로써 미국의 세계전략을 착실히 도왔다. 우리가 필요한 무기라도 미국이 내키지 않으면 돈 주고도 못 샀다. 그러다 미국이 폐기처분할 군사용품들은 떠안기는 대로 다 사줬다.
언제까지 그럴 작정인가. 언제까지 전쟁 중인 나라에 미국이 적선하듯 주었던 꿀꿀이죽의 추억에 젖어 살 셈인가. 설사 부모 자식 사이라도 자식이 자라면 부모 품을 벗어나는 게 정상이다. 이건 망한 명나라의 유해를 가슴에 품고 소 중화를 외치며 역사의 변화를 외면했던 조선의 화석화된 사대부들을 다시 보는 꼴이다. 그 때 이후 우리 민족사가 어떻게 쪼그라들었는지 지난 4백년의 역사로는 부족한가.
지금의 집권세력들은 미국이 서운할까봐는 겁나고 국민들의 분노는 대수롭잖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국민들이 무엇을, 왜 분노하는 지도 관심이 없는 게 확실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민들의 분노가 커져 가는 시기에 서둘러 수입 고시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혹시 일단 고시해 놓으면 방법이 없잖느냐 하며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서둘러 고시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분노하는 대중들을 외면할 수 없는 사회단체와 야당이 모두 손잡고 나설 때를 기다려 5공 시절처럼 싹쓸이 할 계산을 하고 있거나.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여러 행태들을 보면 그런 말도 안 될 꿈을 꾸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만도 없을 듯하다. 국제엠네스티가 그런 위험한 전망까지 하고 나선 것은 설마 아니겠지만 불길하다. 임기가 앞으로도 5년 남은 이 정부인데 하는 일마다 답답하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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