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격비용 산정은 뒷전, 수수료 인하 수단이 된 개편 작업
적격비용 산정은 뒷전, 수수료 인하 수단이 된 개편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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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연구용역 기간 이달 말로 연장···변수 확대 여파
좁혀지지 않는 입장차···역마진 확대 vs 인하여력 충분
조달비용 상승 등에 수익성 악화···업권 소멸 우려 확산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카드 결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카드 결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카드업권의 숙원으로 불리는 카드가맹점수수료 적격비용(이하 카드수수료) 개편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연구용역 자체가 미뤄진 데다, 수수료 개편을 둘러싼 소상공인과 카드업권 양측 갈등이 격화되며 잡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측은 카드사의 호실적을 근거로 수수료 인하여력이 충분하다 주장한다. 반면 업권은 신용부문에서 오히려 역마진이 발생하고 있다며, 수수료 개편안을 수수료 인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비판하고 있다.

13일 카드업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한국금융연구원에 위탁한 '카드수수료 적격비용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정책연구용역기간이 이달 말로 연기됐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2년 개정한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3년마다 적격비용을 재산정해 카드수수료율을 조정하고 있다. 적격비용이란 자금조달비용, 위험관리비, 일반관리비, 결제대행사(VAN) 수수료 등 카드결제 전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을 고려한 수수료 원가를 말한다.

가장 최근 수수료 체계가 개편된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당국은 연 매출 3억원 이하 영세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기존 0.8%에서 0.5%로, 연 매출 3억~30억원 구간 중소가맹점은 기존 1.3~1.6%에서 1.1~1.5%로 인하한 바 있다.

해당 과정에서 영세 가맹점의 수수료 부담은 경감됐으나,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한 소비자들의 카드 혜택이 축소되는 등의 부작용도 발생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 2월 가맹점 협의체, 소비자단체, 카드업권, 전문가 등으로 TF를 구성, 현행 제도 점검 및 적정 수수료 체계에 대해 논의키로 결정했다. 다만 매월 진행키로 한 회의는 올해 2월 이후 현재까지 여섯 차례만 진행됐으며, 당초 10월로 예정된 개선안은 하염없이 지연되고 있다.

이에 대해 TF를 총괄하는 오화세 금융위 중소금융과장은 "본래 지난달까지 정책연구용역을 마무리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레고랜드발 자금경색 문제나 주요국 금리 인상 등 단기금융시장에 많은 변수가 발생했다"며 "그 결과 산정 과정을 좀 더 깊게 들여다 볼 필요성이 발생해, 연구용역기간을 연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미뤄진 연구용역···자금경색 이슈 반영 시 인상에 무게

금융권에선 해당 연구용역 결과만 놓고 보면 수수료 인상 쪽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전망한다.

금융위는 지난 2015년 카드 수수료 재산정 당시 영세가맹점의 수수료율을 1.5%에서 0.8%로, 중소가맹점은 2%에서 1.3%로 0.7%포인트씩 인하한 바 있다.

당시 금융위는 여전채 금리가 2015년 6월 말 2.1%로 2012년 6월 말 대비 1.73%포인트 하락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가맹점 수수료 중 약 20%를 차지하는 카드사의 자금조달비용이 상당폭 인하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수수료 인하의 주된 근거로 이용했다.

반면 최근 급격한 금리인상기를 거치며 여신업권의 조달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올해 1월 말 수수료 개편 당시 여전채 AA+ 3년물 금리는 2.75%였지만, 이달 12일 기준 5.751%로 두배 이상 상승한 상태다. 이 때문에 한국기업평가는 카드사들이 내년 한 해 동안 부담해야 하는 이자비용이 1조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특히 카드사들의 본업 경쟁력은 악화했다. 금융위 산하 금융산업 경쟁도 평가위원회의 '신용카드업 경쟁도 평가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적격비용에 기반한 가맹점수수료 산정방식을 채택한 이래 카드사의 본업인 신용판매에서의 수익창출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빅테크와의 경쟁, 수수료 규제로 본업인 신용판매의 수익이 저조하다. 그 결과 카드사들은 대출사업과 리스 등으로 자산포트폴리오 조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당국의 대출규제, 신차금융시장의 높은 경쟁도, 자산이익률의 장기적 하향세 등 과도한 자산 편입은 오히려 수익성을 저하시킬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적격비용 기반 산정 이래 경험하지 못한 금리상승기에서의 자금조달비용은 카드사의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같은 카드업권의 전반적 수익성 저하는 후발주자에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발하는 소상공인, "호실적 낸 카드사, 인하여력 충분"

카드수수료 개편을 위한 연구용역 결과가 미뤄진 가운데, 결과가 발표된다 해도 개선안에 속도가 날 지는 미지수다.

대표적으로 소상공인 측의 반발을 들 수 있다. 이번 연구용역의 연장근거는 자금경색 등으로 인한 카드사 자금조달비용 급증인 만큼 수수료 인상 근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상공인 측은 카드사들의 호실적을 근거로, 오히려 수수료 인하여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13일 금감원에 따르면 8개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BC)의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조624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7%(1299억원) 증가했다.

반면 소상공인들의 수익은 감소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소상공인들의 올해 평균 순이익이 12.4%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렇듯 에서 조달비용의 상승만으로 수수료율을 인상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상공인연합회 측은 카드수수료 적격비용 산정과 관련해 △영세가맹점 매출액 상향 및 구간별 수수료 인하 △직불카드 수수료 인하 및 일괄적용 △소상공인 단체 협상권 부여 △유류·주류·담배 등 세금을 포함한 카드수수료 손실의 최소화 등을 요구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소상공인들은 매출감소와 휴폐업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영난을 겪고 있음에도, 카드사는 호실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서로 간에 불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공정하게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상회복을 위해서는 소상공인들의 매출 증대와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차라리 없어졌으면"···카드업권, 조달비용 상승 '이중고'

카드업권 역시 수수료 개편 과정이 반갑지 않다. 오히려 수수료 인하의 도구로 활용될 것이라 여기는 분위기다.

카드수수료 개편과정은 가맹점별 협상력 차이 등으로 영세가맹점이 상대적으로 높은 카드수수료를 부담하고 있다는 형평성 문제에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지난 2012년 제도 도입 이래 총 네차례에 걸쳐 수수료는 인하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그 결과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 가맹점의 카드수수료는 2012년 4.5%에서 현재 0.5%로 크게 하락했다. 또한 전체 가맹점의 96%에 달하는 294만4000여곳을 대상으로 원가 이하 수수료가 적용돼, 영세가맹점들의 부담이 크게 경감됐다.

반면 카드사들은 본업인 신용부문의 수익성이 악화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카드론 등 대출성 자산과 신차 할부금융 등 할부·리스자산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개편했다. 그 결과 호실적을 이어갈 수 있지만, 수신기능이 없는 업권 특성상 이번 조달비용 상승 여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내년 카드업권의 이자비용만 3조6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또한 자영업자는 수수료로 인해 세액공제가 발생한다. 연 매출 10억원 이하 가맹점은 매년 이용 금액의 1.3%를 공제받는 점을 감안하면, 영세 가맹점의 실질 카드 수수료는 0%인 셈이다. 이 때문에 카드업권은 수수료가 최소 1.5%는 돼야 역마진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매번 수수료는 인하되며 역마진이 확대됐다.

이 때문에 지난 10월 취임한 정완규 여신금융협회장은 취임 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신용카드 가맹점수수료 제도 개선을 꼽기도 했다.

그러나 카드업권 내부에서 수수료가 인상될 것이란 희망은 저조하다. 오히려 최근 금융사 CEO에 대한 낙하산 논란, 관치 등과 관련해, 인상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오랜 기간 신용부문에서 역마진이 발생하면서, 카드론·리스 등 본업 외에서 벌어 메꾸고 있다"며 "이런 노력이 호실적으로 나타나면, 또 다시 수수료 인하 근거로 활용된다. 내부에선 차라리 적격비용 개편 과정이 없어졌으면 하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지금 업권 내 수수료를 인상해야한다는 의견은 수익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최소 손해라도 보지 말자는 것이다"라며 "빅테크와의 경쟁에서도 규제 등으로 뒤처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본업 경쟁력이 더 악화될 경우 카드업은 자연 소멸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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