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현 정부 기업규제개혁, 시작이 좋다
[전문가 기고] 현 정부 기업규제개혁, 시작이 좋다
  •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2본부장
  • choa109@seoulfn.com
  • 승인 2022.09.0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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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2본부장

얼마 전 경제계에 있는 지인이 물었다. "새로운 정부가 경제관련 규제개혁을 잘하고 있나요?" 거침없이 잘하고 있다고 답했더니 지인은 매우 의아한 반응이었다. "뭘 잘하고 있나? 하고 있는 게 없지 않나?" 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필자는 현재 경제단체에 근무하고 있으며, 과거 김대중 정부 때부터 현재까지 20여년이 넘게 기업관련 규제개선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는 기업관련 규제를 과감히 개선하겠다고 여러번 천명했으며, 경제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 과연 무엇을 했을까? 

애석하게도 이를 아는 국민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 과감히 현 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현 정부는 '경제민주화'니, '재벌개혁'이니 하는 정답이 없는 거대담론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뭔가 정의로워 보이고 공정해 보이는 이런 단어들은 신문기사의 헤드라인으로도 단골이었고, 일반 국민들의 눈길을 끌기에도 최적이었다. 

그런데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 재벌개혁이 무엇인지 정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대주주가 아무리 지분이 많아도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면 경제민주화이고, 평생 일궈놓은 기업을 자식들이 승계 받지 못하게 하면 재벌개혁으로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라면 우리가 하는 세계적 투자가 워렌 버핏이 경영하는 버크셔헤서웨이는 아주 지독한 비민주적 기업이다. 그는 주식 수는 적지만 차등의결권이라는 주식으로 회사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타는 포드 자동차라는 회사도 아주 못되고 이미 돌팔매를 맞아야 할 기업일지도 모르겠다. 3세에 이어 4세 경영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아직까지는 정답이 없는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을 외치지 않고 있다. 

다음으로 현 정부의 규제개혁은 답이 있는 구체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난 7월 28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경제 규제 혁신 방안'을 발표하며 우선 50개 혁신 과제를 발표했다. '조선소 협동로봇 안정성 기준 간소화', '자율주행로봇 인도주행 허용', '하이브리드 전력시스템 옥상설치 허용' 등이다. 제목만 들어선 참 다가오지 않는 과제들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거의 뉴스화도 안됐고,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는 듯 하다. 

이런 구체적이고 세밀한 규제개선은 기업현장에서 절실하게 개선을 필요로 하는 과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잘 모르더라도 지속적으로 발굴해서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구체적 규제개혁은 여야간 정쟁을 불러오지 않고 경제에 실질직이고 효과적이 도움을 준다. 좋은 시작이고 좋은 접근방식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새로운 정부가 경제관련 규제개혁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조금 더 바라는 바가 있다. 바로 지난 정부에서 모든 경제단체가 '기업질식 법'이라고 평가했던 기업규제 3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2020년 상법과 공정거래법 및 금융그룹감독법을 한데 묶은 '기업규제 3법'의 개정을 통해 도입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다중대표소송' 및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규제들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하고 자회사 경영진한테 소송제기할 수 있게 하면 경제민주화가 된다는 근거도 없는 이념에 치우친 규제일 뿐이다. 오히려 연구개발과 과감한 투자를 통해 경제발전에 기여해야 할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와 소송리스크 방지를 위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비합리적 규제다.

다음으로 최근 여러 사례를 통해 규정의 모호함과 처벌수위의 과도함이 화두가 된 '중대재해처벌법'을 들 수 있다. 이 법에는 경영책임자의 위험방지의무를 부과하고, 의무를 위반해 심각한 재해를 유발했을 때 형사처벌은 물론 해당 기업에 대해 과중한 벌금을 부과하는 등 강력한 처벌 수위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근로 현장에서의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어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또한 60년간 근거없는 대못 규제를 하나 더 풀어야 한다. 바로 기업에서 감사 등을 선임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소위 '3%룰(3% Rule)'이 그것이다. 이 제도는 상법 제정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3%룰에 내재된 문제는 그 취지가 무엇인지 어떠한 논의를 통해 도입됐는지에 관한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제도는 폐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단지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보완 장치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만을 반복한다. 근거 없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다.

마지막으로 현 정부는 진심으로 듣고 정확한 의사소통을 해주기 바란다. 과거 기업규제 3법이 발의되고 경제계가 반발하자 정부여당은 대책반을 꾸려 여러 경제단체들과 간담회를 개최하고 경제계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듣기만 하고 반영된 것은 없다. 물론 기념사진도 찍고 뉴스는 많이 나왔다.  

5년의 임기 중 이제 4개월을 지나고 있는 현 정부는 지난 정부가 걸어온 길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이제 현 정부가 출범시 계획했던 과제를 하나씩 풀어나가야 할 때다. 물론 국내외적으로 정치·경제 여건이 녹록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체계 즉 하드웨어가 어느 정도 갖춰진 이상 산재해 있는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에 어울리는 신개념의 규제 알고리듬(algorithm)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분야의 전문가를 비롯해 각종 규제의 대상이 되는 주체와 함께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주기적으로 타당성과 실효성을 검증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모쪼록 최근의 난관을 극복해 모두가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자는 의지가 새로운 체계와 정책으로 그 실효성을 거두길 소망해 본다.

눈길 못 끌어도 뉴스 덜나와도 구체적이고 정답있고 실효적인 규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에 큰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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